A시에 거주하는 B씨는 일반 마트에서 초등학생 자녀의 급식카드로 구매 불가 품목인 담배와 세제, 휴지 등을 샀다. 일부 부모는 집 인근 마트에 급식카드를 맡겨두고 아이를 위한 식품 대신 생활용품을 다량 구매했다.
이처럼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결식아동 급식카드’ 곳곳에 구멍이 뚫린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가 아동 식사와 무관한 술·담배를 사거나 술집·PC방 등에서 카드를 사용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한편에선 아동이 카드에 충전된 급식비를 제대로 쓰지 못해 소멸한 금액만 연 171억에 달했다.
국무조정실·보건복지부는 24일 이러한 내용의 결식아동 급식카드 운영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11월~올해 4월 급식카드를 운용 중인 182개 지자체의 카드 사용 내용을 분석하고, 17개 광역 시도별로 시군구 한두곳씩 선정해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약 15만명의 아동이 쓰는 급식카드는 기초생활수급 등 18세 미만 취약 아동들의 결식 예방·영양 개선을 위해 식사 비용을 지원하는 카드다. 지난해 기준 182개 지자체가 카드를 발급·운용하며, 예산액은 총 5621억원이다(지방비 100%). 복지부는 취약계층 대상자 자격과 한 끼당 지원 단가를 지자체에 권고하는 식이다.
조사 결과, 17개 광역 시도(표본 조사) 중 13곳에서 아동 식사와 무관하게 술·담배 구입 등 부적절하게 사용되는 사례가 확인됐다. 편의점은 기술적으로 술·담배 구매 결제를 차단하지만, 대부분의 일반 마트엔 해당 시스템이 설치되지 않은 허점이 있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결식아동 부모가 자신의 가게에서 충전금 전액을 허위 결제하거나, 마트 업주와 모의해 자녀 카드를 미리 맡겨 두고 세제·휴지 등 생활용품을 대거 구입한 사례도 들통났다.
182개 지자체의 지난해 1~8월 카드 사용 내용을 확인한 결과, 전체 발급 카드의 14%(2만2000장)가 카페·술집·미용실·PC방 등 식사와 관련이 적은 업종에서 쓰였다. 일반적인 식사 시간이 아닌 심야(오후 10시~오전 6시)에 결제된 금액도 전체의 4.4%로 집계됐다.
또한 결식아동의 사망·졸업 등 변동사항에 대한 관리도 허술했다. 부모가 결식아동을 학대해 분리된 뒤에도 카드 사용이 이어지거나(14명), 아동이 숨진 후 식사비 등으로 카드를 쓴 사례(1명)도 있었다.
이와 반대로 결식아동이 카드에 충전된 비용을 충분히 사용하지 못하고 자동 소멸하는 액수도 많았다. 2024년 카드 충전액 중 사용되지 않고 소멸한 금액이 171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체 충전액의 7.8% 수준이다. 미사용 원인으론 카드 사용 시 사회적 낙인 우려, 사용법 미숙지 등이 꼽혔다.
정부는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제도 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우선 지자체가 카드사와 협의해 술·담배 등 금지 품목 결제 제한 시스템을 일반 마트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부적정 업종은 가맹점에서 제외하고, 심야 이용도 제한할 예정이다.
아동이 급식카드 지원액을 충분히 쓸 수 있도록 카드 사용법 안내 등을 강화하고, 사용액이 적은 아동 가구엔 사용 가능 잔액을 문자 메시지로 알려주기로 했다. 카드 발급 후에 복지정보 통합시스템인 ‘행복e음’ 등록 의무를 명확히 하는 등 사후 관리도 강화한다.
김영수 국무조정실 정부합동부패예방추진단장은 “지방 정부가 급식카드 발급에 치우쳐 관리엔 소홀한 부분이 확인됐다”면서 “카드의 장점도 있지만, 도시락·반찬 배달 등 급식 지원 취지에 보다 부합하는 대안을 검토하는 것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개선 사항을 담은 정부 지침은 8월까지 개정할 예정이다. 지자체마다 카드 관리 상황의 격차가 큰 만큼, 현장에서 바뀐 지침이 잘 적용되는지 확인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