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2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각국에 부과할 상호관세를 설명하고 있다. 한국은 25%라고 표기했다. AFP=연합뉴스
세계를 흔드는 미국의 상호 관세(Reciprocal Tariffs) 부과 결정이 얼마나 주먹구구로 이뤄졌는지 전말이 공개됐다. 행정부가 보고한 공식 자료를 믿지 않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트럼프가 다그치자 입맛에 맞춘 숫자를 낸 백악관 참모진의 합작품이었다.
트럼프는 지난해 4월 2일(현지시간) 세계 각국에 상호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트럼프가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직접 꺼내 든 관세율 차트에서 중국은 34%, 유럽연합(EU) 20%, 베트남 46%, 대만 32%, 일본 24%, 인도 26%였다.
관세율 25%를 적용받은 한국도 같은 해 11월 최종 협상 결과 관세율을 15%로 낮추기까지 좌불안석이었다. 이재명 대통령과 재벌 총수가 백악관을 방문해 3500억 달러(약 540조원)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등 공을 들였다.
뉴욕타임스(NYT)는 23일(현지시간) 트럼프가 관세율 ‘N %’로 세계 무역 질서를 흔들기 불과 며칠 전까지도 구체적인 관세율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밝혔다. NYT의 백악관 출입기자 매기 하버만과 조나단 스완은 이날 펴낸 책 「정권 교체(Regime Change)」에서 상호 관세 정책 발표일 전후로 백악관 내부에서 벌어진 혼란상을 이같이 전했다.
책에 따르면 관세 발표를 며칠 앞두고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세계 무역상대국 인사들에게 연락을 돌려 경고 메시지를 전하는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경고 내용은 모호했고, 확실한 건 “보복 조치를 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이었다. 발표 직전까지 관세율을 구체적으로 확정하지 못한 건 관세가 철저한 분석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나온 게 아니어서다. 책은 “트럼프 개인이 직관과 고집에 따라 관세를 조율했다”고 짚었다.
구체적으로 트럼프는 관세 발표 일주일 전인 3월 26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참모진과 회의를 열었다. 러트닉 장관이 무역대표부(USTR)에서 산출한 각국의 대미 관세율 자료를 제시했지만, 트럼프는 “이건 빌어먹을 헛소리 숫자”라며 믿지 않았다. 러트닉은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를 돌아보며 “뭐라고 말 좀 해보라”라고 다그쳤다. 하지만 그리어 대표는 입을 닫았다.
그러자 트럼프는 집무실 구석에 앉은 나탈리 하프 보좌관에게 “구글링(구글 검색) 좀 해봐. 그리고 내게 진짜 숫자를 가져와 봐”라고 주문했다. 하프는 트럼프가 관심 있을 만한 소셜미디어(SNS) 게시글이나 뉴스를 검색해 출력해주는 역할을 하는 보좌관이다. 백악관에서 ‘인간 프린터(human printer)’로 불린다.
결국 트럼프는 ‘관세 책사’로 불리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고문과 상의해 관세율을 확정했다. 무역적자를 수입액으로 나눈 뒤 다시 절반으로 나눈 수치를 관세율로 매기는 식이었다. 이론적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산출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주먹구구 세율을 두고 백악관 참모진조차 사석에서 불평을 털어놨다. 물론 트럼프 면전이 아닌 ‘뒷담화’에 불과했다.
트럼프는 정작 관세율을 발표한 다음 날 언론에 난타당하자 나바로를 탓하며 “피터의 빌어먹을 멍청한 숫자들”이라고 불만을 늘어놨다. 현재까지 이어진 상호 관세의 전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