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5일 고동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분리막을 이용해 원유에서 나프타·휘발유 등 성분을 상온에서 분리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관련 논문은 이날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됐다.
세계 각국 에너지부 등에 따르면 기존 전 세계 에너지 소비의 10~15%는 분리·정제 공정에 쓰인다. 특히 원유의 경우, 350도 이상 고열로 원유를 끓인 뒤 끓는점 차이에 따라 LPG·나프타·휘발유·등유·디젤 등으로 나누는 증류 방식이 널리 쓰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만 연간 1100테라와트시(1GW급 대형 원자력 발전소 130기가 1년 내내 생산해야 하는 양의 에너지) 이상의 에너지가 소모되고 화석연료 연소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연간 1억 6000만 t에 달한다.
원유 분리막 정유 논문 네이처지 표지 사진. 사진 연구팀
정유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탄소를 줄이기 위해, 학계에선 원유를 끓이지 않고 분리막을 통해 특정 성분을 걸러내기 위한 연구가 진행됐다. 분리막은 얇고 정교한 ‘선택층’과, 그 아래에서 구조를 지탱하는 ‘PAN’(폴리아크릴로니트릴·합성섬유 기초 소재) 지지층으로 구성되는데, 기존 연구는 이 선택층에만 집중해 왔다. 문제는 이 선택층을 아무리 복잡하게 만들어도 투과물에 큰 차이가 생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고동연 교수팀은 분리막의 받침대 역할을 하던 PAN 지지층에 집중했다. 고 교수는 “다른 선택층을 사용하더라도 투과물이 비슷하다면 분리막의 선택층이 아닌 지지층이 그 역할을 해낸 것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선택층을 제거하고 PAN 지지층만으로 실험한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원래 PAN 지지층의 기공 크기는 15~18나노미터로 매우 넓어, 일반적으로 분자를 걸러낼 수 없다. 그런데 연구팀은 이 막에 원유를 흘려보내자 탄화수소 계열의 무거운 성분들이 구멍 벽면에 달라붙으며 구멍이 머리카락 굵기의 5만분의 1인 2나노미터 이하로 좁혀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좁아진 통로 덕분에 나프타·휘발유·등유 등 가벼운 성분만 걸러지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분리막과 기존 증류탑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공정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에너지 30%, 이산화탄소 배출 38%, 운영비용 36% 절감 효과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기존 정유 설비를 교체할 필요 없이 배관에 필터 모듈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적용 가능하며, 국내 전체에 도입할 경우 연간 온실가스 약 1000만 t을 줄일 수 있다고 연구팀은 추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