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역사의 재앙이었다. 그러므로 전쟁은 줄이는 것이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질병보다 참혹하다. 그럼에도 전쟁 뒤에 복구가 이뤄진다는 논리(J. Morris)는 참으로 잔인하다. 한국의 경우에도 파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 또는 중동에 견주어 더 심한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전쟁이 많았던 축에 드는 나라이다. 그런 상황은 지금도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
1960년대의 병역법 44조 1항의 4(2대독자)에 따라 나는 군대를 면제받을 입장이었지만 아버지는 병사계에 찔러줄 돈이 없어 잡혀가듯 입대했다. 군대 생활을 하며 나는 휴전선 남단에서 북한의 남침에 대비하는 탱크 저지선(콘크리트 대전차 장애물) 사역병으로 차출되었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사역은 고달프다. 비 오는 날이면 먼지가 나지 않아 좋고, 햇살이 쪼이면 흙탕물이 튀지 않아서 좋다고 선임하사는 우리를 놀렸다.
탱크 저지선의 양생이 끝나려면 통상 4주가 걸린다. 어느 날 작업을 마치자 공병 대위가 우리에게 물었다. “북괴군이 이 저지선을 폭파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누구도 알 턱이 없다. 그때 그 장교가 이렇게 말했다. “북괴군이 이를 폭파하고 남진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35분이다. 우리는 그 35분을 지키고자 여러분은 15일 동안 고생했다. 그러나 우리의 조국을 지키는 것은 인간의 의지이지 이런 구조물이 아니다. 알겠나?” “예.” 우리는 목청이 찢어지도록 복창했다.
나는 가끔 조국의 국방이 어려울 때면 60년 전 30사단 공병 대위의 형형한 눈빛과 목소리를 회상한다. 어느 한때인들 조용했을까마는 지금 나라가 어렵다. 성채가 도시를 지켜주는 것이라면 성이 없는 스파르타는 일찍 멸망했어야 한다고 플루타르코스는 말한다. 우리와 같은 작은 국가가 강대국의 틈새에서 살아남는 길은 지혜와 영도력과 우국심밖에 없다. 한국전쟁 발발 76주년을 맞아 문득 그 공병장교를 회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