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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설치하자” 대선 공약 됐다…폭염이 부른 유럽의 ‘냉방 정치’

중앙일보

2026.06.24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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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을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보고 반(反)에어컨 정서를 고수해 온 유럽이 기록적 폭염 앞에서 에어컨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냉방 시설 확충이 대선판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고, 영국에서도 에어컨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프랑스 전역에 폭염이 이어진 24일(현지시간) 파리 에펠탑 인근 트로카데로 분수에서 시민들이 물에 몸을 담그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 전역에 폭염이 이어진 24일(현지시간) 파리 에펠탑 인근 트로카데로 분수에서 시민들이 물에 몸을 담그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르펜 “병원·학교부터 냉방”…프랑스 대선판 쟁점으로

프랑스의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의원은 최근 “사람들이 폭염 때문에 목숨을 잃고 있다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라며 “만약 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가장 취약한 계층이 있는 병원, 요양원, 학교부터 대규모 냉방 시설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또 에어컨을 공중보건 문제로 규정하고, 현 정부와 좌파 진영이 냉방시설 확대를 이념적으로 접근해 주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프랑스에선 2003년 폭염으로 약 1만5000명이 숨진 전례가 있는 만큼 이제는 폭염 대응을 복지와 안전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녹색당을 비롯한 좌파 진영은 르펜 의원이 폭염 대응을 에어컨 설치 문제로 단순화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좌파 진영의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 대표는 “모든 곳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은 (탄소 배출에 따른) 피해를 가중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는 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특히 에어컨 보급률이 낮다. 프랑스 환경전환청에 따르면 주택 에어컨 보급률은 2025년 기준 24% 수준이다. 2023년 18%에서 2년 만에 크게 늘었지만 여전히 주택 네 곳 중 세 곳은 에어컨이 없는 셈이다.

프랑스는 전력 생산의 70%가량을 원자력 발전에 의존하는 대표적인 원전 강국으로 전력 수급에 여유가 있지만, 에어컨 설치를 꺼려하는 특유의 문화가 있다. 인위적인 찬바람이 건강을 해친다는 인식, 에어컨이 지구 온난화를 부추긴다는 환경주의, 냉방을 미국식 과소비의 상징으로 여기는 정서 등이 겹친 결과다. 수백년 된 역사적 건축물이 많은 파리의 경우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건물 외벽에 에어컨 실외기 설치를 금지하는 규제도 있다.



영국·독일에서도 “에어컨 필요”

에어컨 논쟁은 영국 정계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영국은 그동안 비교적 서늘한 기후 덕분에 에어컨 없이도 여름을 보낼 수 있는 나라로 여겨졌지만 최근 폭염이 반복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영국 기후변화위원회는 병원과 요양시설에 2035년까지, 학교에는 2050년까지 냉방 설비가 필요할 수 있다고 권고했다. 이런 목소리가 높아지자 보수당은 신규 주택의 에어컨 설치를 어렵게 해온 건축 규제를 손보겠다고 밝혔다. 차양·환기·창문 설계 같은 수동 냉방을 우선하도록 한 규정이 현실과 맞지 않다는 취지다.

폭염이 영국 전역으로 확산한 23일(현지시간) 잉글랜드 북부 허더즈필드에서 한 시민이 일광욕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폭염이 영국 전역으로 확산한 23일(현지시간) 잉글랜드 북부 허더즈필드에서 한 시민이 일광욕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동식 에어컨과 선풍기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 독일도 상황이 비슷하다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독일 내 에어컨 생산량은 2019년 18만1000대에서 2024년 31만7000대로 75% 증가했다. 또 야외 노동 현장에선 물류업체가 집배원에게 냉각 조끼와 물병을 지급하고 일부 건설 현장은 한낮 작업을 피하기 위해 작업 시간을 새벽으로 앞당기고 있다고 한다.



“유럽, 세계 평균 두 배 속도로 가열”

기후위기 대응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며 에어컨 설치를 부정적으로 바라온 유럽 국가들이 변화하기 시작한 건, 다른 지역에 비해 이 지역의 폭염 피해가 유난히 커서다. 뉴욕타임스(NYT)는 24일 “유럽 평균기온이 1990년대 중반 이후 10년마다 약 0.56도씩 올랐다”고 전했다. 세계 평균 상승 속도의 두 배를 넘는다.

특히 북극권과 가까운 지리가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극 해빙이 줄면 햇빛을 반사하던 흰 얼음 대신 어두운 바다가 드러나 더 많은 태양에너지를 흡수한다. 대기오염 규제로 공기 질이 좋아진 점도 역설적으로 일부 온난화 효과를 키웠을 수 있다. 공기 중 미세입자가 줄면서 햇빛을 우주로 되돌려 보내는 차단 효과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이근평([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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