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남에 수백조원 규모 반도체 공장을 짓는 방안을 정부와 조율 중이다. 경기 남부를 ‘마지노선’으로 두고 투자하던 두 회사가 방향을 튼 배경을 두고 정부의 지역 균형발전 논리에 밀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반도체 강국인 미국·일본·대만·중국은 반도체 공장입지 문제를 어떻게 풀었을까.
김경진 기자
주주 자본주의가 강한 미국은 철저하게 기업이 반도체 공장입지를 정한다. 만약 미국 대통령이 “인텔은 오하이오에 공장을 지어라”고 주문할 경우 주주부터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래서 인텔(오하이오), 마이크론(뉴욕), TSMC(애리조나) 모두 회사가 사업성과 공급망을 고려해 공장 부지를 결정했다. 다만 정부는 2022년 제정한 ‘칩스법(CHIPS Act·반도체지원법)’에 따라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주는 등 측면에서 지원했다. 주(州)정부도 송전망·도로·산업단지 특혜를 주며 기업 유치 경쟁을 벌였다.
2024년 3월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 첫째)이 애리조나주 인텔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에서 보조금 지급을 발표한 뒤 직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인텔=연합뉴스
일본도 기업 판단이 우선이지만, 정부가 팔 걷고 나선 건 비슷하다. TSMC가 구마모토에 공장을 짓기로 한 건 소니를 비롯한 반도체 공장 생태계를 갖춘 데다 풍부한 용수를 공급받을 수 있어서였다. 물론 정부도 TSMC 투자액의 절반 수준인 4760억 엔(약 4조1000억원)을 보조금으로 지급했다. 정부가 “구마모토에 지어라”고 하는 대신 “구마모토에 지으면 투자비 절반을 보조하겠다”는 식에 가깝다. 니혼게이자이는 “정부가 반도체 기업의 투자 결정을 대규모 재정으로 뒷받침했다”고 평가했다.
대만은 아예 정부가 전폭 지원하는 신주·타이난·가오슝 등 산업단지에 TSMC를 ‘모셨다’. 정부가 산업단지 조성, 용수 확보, 송전망 구축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지만, 생산라인 배치는 TSMC의 공급망 전략에 따라 결정됐다. 최근 가오슝 투자 역시 정부가 남부 지역 발전을 강조한 측면은 있지만, 반도체 공급망 확대와 첨단 공정 증설이라는 TSMC의 사업 판단이 우선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대만 가오슝의 TSMC 반도체 공장 전경.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은 주력 산업에 대한 정부 개입이 강한 국가다. 하지만 중앙 정부가 입지를 정하기보다 지방정부 간 유치 경쟁이 치열한 구도다. SMIC·CXMT·YMTC 등 반도체 회사를 유치하기 위해 상하이·허페이·우한 등 지방 정부가 토지를 무상 제공하고, 세금을 깎아주고,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경쟁을 벌였다.
요약하자면 기업이 사업성과 인력·용수·전력·생태계 등을 고려해 반도체 공장입지를 정하되, 정부가 재정·세제·인프라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식이다. 기업이 원하는 입지를 정부가 만들어 주는 쪽에 가깝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호남에 반도체 공장을 짓게 된다면 기업의 예상 밖 투자에 초과 세수를 활용하는 등 초유의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