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이 지난해 11월 서울 동작구 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박정희·전두환 시대는 기록의 공백기였어요. 통제가 극심했고, 감시에 시달렸죠. 제 오래된 기억으로 시대의 공백을 메울 수 있길 바랍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측근인 김덕룡(85)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은 25일 회고록 『그때 거기 김덕룡이 있었다』를 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24일 출간한 회고록엔 YS의 실무진으로 경험한 3당 합당, 문민정부의 개혁 과정에서 겪은 비화가 촘촘히 엮여있다.
특히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주정의당과 YS의 통일민주당,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신민주공화당이 합쳐 민주자유당을 창당한 3당 합당 과정의 자세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겼다. 김 이사장은 “1989년 10월, YS가 ‘절대 기밀’이라며 부른 게 3당 합당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세 정당이 합당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노태우 정부 실세였던 박철언 당시 정무장관이 갑자기 내각제 도입을 주장했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가 도입된 지 2년밖에 안 됐는데, 무슨 내각제냐. 합당이고 뭐고 다 그만둬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밝혔다.
이튿날 ‘내각제 소동’을 보고받은 YS도 “내각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이사장은 “내가 그다음 협상에서 ‘또 내각제를 주장하면 협상은 끝이다’라고 하자, 박 장관은 물러났다”고 전했다. 이후 1990년 1월 3당 합당은 타결된다.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맨 오른쪽)이 1985년 김영삼 당시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맨 왼쪽)과 함께 민족문제연구소 현판을 걸고 있다. 사진 김 이사장 제공
합당 뒤 치러진 14대 대선에서 승리한 YS는 취임 11일만인 1993년 3월 8일 군부 조직인 하나회를 해체하고, 같은 해 8월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는 등 개혁의 고삐를 당겼다. 김 이사장은 “3당 합당이라는 대타협이 있었기에 피를 흘리지 않고 민주화 시대를 열었다”고 회고했다.
회고록엔 김 이사장이 박정희 정부 시절 정치권과 재야 세력을 연결해 투쟁을 주도했던 일화도 언급된다. 국회에서 금융개혁을 주도한 경험담도 포함됐다. 초선 의원이던 1989년 정부의 국정감사 제출 기피 지침을 폭로했던 일화도 기록돼있다. 김 이사장의 회고록 출판 기념회는 오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박물관에서 열린다.
1983년 5월 김영삼 총재의 23일간 단식투쟁 당시 모습. 가운데가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이다. 사진 김 이사장 제공
김 이사장은 “최근 정치가 극단적 진영 분열과 소모적 정쟁에 시달려 비통하다. 정치가 권력 쟁탈의 수단으로 갈등을 이용만 하고 있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분산하는 권력 분산형 개헌과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을 제안하며 “정치가 상생의 길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북 익산 출신인 김 이사장은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1970년 YS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88년 서울 서초을에서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내리 5선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