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윤은 ‘0집’을 “제대로 된 집을 만들어주고 싶던 소중한 노래들”이라고 했다. [사진 마름모]
“변명이 덕지덕지 붙어있던 노래들이었어요. 머릿 속으론 ‘이만큼’ 좋은 곡을 상상했지만 결과물은 ‘요만한’ 것만 같아서, 언젠가 (음원사이트에서) 다 내렸죠. 그 후로 오랫동안 부채감이 있었어요. 이 소중한 노래들에게 제대로 된 옷과 집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지난 22일 서울 합정동의 한 연습실에서 만난 가수 이승윤(37)은 26일 오후 6시 발매될 네 번째 정규앨범 ‘0집’에 실린 노래들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승윤은 2020년 ‘싱어게인(JTBC)’ 우승 이후 6년 간 앨범 초동 최고 판매량 10만장 달성(3집 ‘역성’, 2025), 단독 콘서트 및 전국 투어 매진(2022~), 한국대중음악상 수상(2025·2026) 등 꾸준한 활동으로 팬덤을 구축한 싱어송라이터다.
‘0집’은 이승윤이 2011년부터 2020년까지 홀로 작업했던 미완의 노래 28곡과 신곡 1곡을 한데 모아 완성됐다. 몇몇 곡은 한때 음원사이트에도 등록됐지만 이승윤이 스스로 내렸다. 그는 “‘0집’에는 내가 그간 만들었던 곡들의 원형과 결과물이 동시에 들어있다”며 “이번에 작업을 하다 보니 ‘0집’을 내기 위해 앞선 세 장의 음반을 낸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0집’의 음악적 색채는 모던 록에 기반을 둔 앞선 세 장의 음반과 비슷하다. 다만 이승윤이 20대에 썼던 가사들은, 다소 묵직했던 전작들에 비해 가볍고 밝은 느낌을 준다.
타이틀 곡 ‘무얼 훔치지’는 나는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청년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타인의 것을 배우며 자아를 형성해 가는 과정을 ‘훔치다’는 말로 표현했다. 이승윤은 “어느 순간 너무 많은 것들을 덕지덕지 붙이고 살면서 그게 나라고 오해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나를 구성하고 있지만 진짜 내 것이 아님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고민하다 ‘훔치다’라는 단어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그림자는 너를 가리고 있지만/그림자는 너를 가질 수 없단 걸 잊지 마”라고 말하는 ‘그림자 위로’에 대해서는 “30대엔 쓸 수 없는, 대책 없는 희망가”라고 했다. “어딘가를 여행하며 큰 나무 밑 그늘에 난 들풀들을 봤어요. 거대한 나무의 그림자가 들풀까지 다 가져버리는 것 같지만 결국 그건 그림자일 뿐이잖아요. 비켜서면 그만인 것을. 그런 들풀에게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이번 앨범에는 조희원 PD, 기타리스트 이정원, 드러머 지용희 등 이승윤의 오랜 음악적 동료들이 총동원됐다. ‘0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호빈 감독과 정다희 애니메이션 감독은 타이틀곡 ‘뒤척이는 허울’과 ‘무얼 훔치지’의 뮤직비디오를 만든다.
17살부터 곡을 써온 이승윤은 “아무도 내 음악을 들어주지 않던 그 당시의 노래를 나만큼 팬들이 아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무명 시절 거의 매일 버스킹을 했어요. 남들이 알 만한 노래를 부르면 군중이 하나둘 몰려요. 그러다 제 자작곡을 부르면 사라지죠. 그럴 때마다 또 커버 곡을 불러야 하나 고민했어요. 하지만 결론은 ‘한두 명이라도 들어준다면 나만의 노래를 부르겠다’ 쪽이었어요. 그 마음을 지금도 지키고 있어요. 남들이 원하는 것보다는 제 음악, 생각을 들려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