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하고 부당한 일을 당할 때 누구나 억울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 억울감 만큼 탐욕스러운 감정도 없어서, 나의 모든 이야기를 먹어 치우고 마치 내게 아무것도 남지 않은 듯 느끼게 합니다. 그동안 내가 고난을 헤쳐 나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즐거웠고 기뻤었는지를 잊게 합니다. 대신, 또 다른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 그 누구도, 어떤 가능성도 통과하기 힘든, 날 선 방어벽을 치고 나를 뒤로 물러서게 합니다.
억울함 과하지 않은지 살피고
억울함 이후를 ‘그리고’로 이어
독서·산책·영화로 나를 넓혀야
마음은 자꾸 좁아지고 야박해집니다. 온갖 생각에 갇혀 머리가 터질 것 같아, 나를 지지하고 도움을 주던 사람들을 잊게 합니다. 말과 행동을 다정하게 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러한 태도가 나의 사람들을 떠나게 하고 나의 미래를 비틀어 버릴까 봐 겁이 나면서도, 생의 에너지가 바닥이 나 어쩔 수가 없다고 느껴집니다. 그저 ‘나는 실패했으니까’ ‘사고를 당했으니까’ ‘난 지금 신경 써야 할 게 많으니까’ 같은 말들에 갇혀버립니다. 나 자신에게 또 타인에게 이런 말을 해야 하는 상황조차 억울합니다.
이때 한편으로는 대인관계에서의 결벽증이 나를 더욱 고립시키기도 합니다. 내게 그렇게나 큰 해를 끼친 이들이 치 떨리게 싫어서, 나만큼은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생각에 예민해집니다. 내 존재가 해가 될까 싶어 물러섭니다. 정말 도움이 필요할 순간에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홀로 견디려 합니다. 고통의 시작은 분명 나의 악운 혹은 타인의 악의 때문이었지만, 이후 이어진 방어태세는 나를 또 다른 억울의 구덩이로 깊이 파묻습니다.
이 구덩이에서 걸어 나오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분명 있습니다. 첫째는 억울감을 ‘사건에 비례한 정도로만’ 남겨두는 것입니다. 그 일은, 누가 봐도 억울한 일이 맞습니다. 그러나 지금 파 놓은 억울의 구덩이는 사건 당시보다 훨씬 깊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 주세요. 뒤로 계속해서 물러났기 때문입니다. 당시로써는 최선의 선택이었겠으나, 그 억울감이 나를 너무 멀리 데려왔음을 눈치채세요. 그러니 지금 질문하세요. 나의 억울감의 크기는 사건에 비례하나. 이렇게까지 깊고 오래 억울해하고 있으면, 이것은 정말 억울하지 않은가.
둘째, 내게 붙인 꼬리말을 수정하세요. ‘나는 실패했으니까’ ‘나는 피해자여서’ ‘운 나쁘게 우울과 불안이 있으니까’ 같은 말들이 나 자신인 양 행세하게 두지 마세요. 이들을 부인하거나 억지로 극복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로 이어지는 그다음의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적어주시길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인과관계가 없어도 좋습니다.
억울한 과거의 일을 양분 삼아 ‘극복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저는 바라지 않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임상심리학자 동료들은 ‘외상 후 성장’이라는 심리학적 개념이 어떤 분들께는 가능하지만, 많은 분께는 폭력적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심각한 외상을 경험하고 무려 ‘성장’까지 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과한 요구입니다. 단지 바라는 것은, 스스로가 적어 내리는 책의 1부가 끝났음을 알아차리고, 책의 2부의 초안을 쓰기 시작하시는 것, 그것뿐입니다.
그러므로 2부의 이야기는 ‘그리고’로 이어가세요. ‘나는 그 사건의 피해자였고 그리고 요새는 책을 즐겨 읽습니다’ ‘나는 우울증이 있고 그리고 산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당시 크게 억울한 일을 당했고 그리고 이번 주말에는 꼭 원하던 영화를 볼 것입니다’. 나를 넓혀 나가는 데에 있어 ‘그리고’의 선언은 생각보다 강력합니다.
억울감에 내 생을 저당 잡히지 마세요. 나의 억울감더러, 적당히 하라고 언짢은 티를 내세요. 내 억울감의 크기와 나의 행동의 초점을 다시 잡으세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그 일이 하필 지금 내게 닥친 것으로, 책의 1부는 끝이 났습니다. 이제 2부를 쓰세요. 2부에는 수많은 ‘그리고’들이 등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껏 나를 지켜주었던 1부의 사람들도 함께 나올 테니, 그 역시 단단히 붙잡으세요. 민폐가 될까 물러서지 마시고, 그저 ‘고맙다’고 해주세요. 1부 내내 단지 그 말만을 기다려 온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