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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남훈의 이코노믹스] 반도체 호황, 흘려보내지 말고 재투자로 성장동력 삼아야

중앙일보

2026.06.25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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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초과세수’ 어디에 쓸 것인가
권남훈 산업연구원 원장

권남훈 산업연구원 원장

나라에 갑자기 큰돈이 들어와도 고민은 줄지 않는다. 반도체 초호황과 수출 호조가 안긴 성과를 어떻게 쓸 것인가는 올해 우리 경제의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다. 불씨는 삼성전자 노사협상을 둘러싼 논쟁으로 시작해, 이른바 ‘초과이윤’과 ‘초과세수’를 둘러싼 공방으로 번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정책의 대상은 ‘초과세수’이며 이를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데 집중 투자하겠다고 밝히면서 가닥은 잡혔다. 그러나 무엇에 어떻게 투자할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았고, 기업에 더 큰 사회적 기여를 요구하자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방법에 초점을 맞춰 하나씩 따져 보자.

늘어난 세입은 성장 효과 가장 큰 곳에 쓰고 기업도 재투자하도록 유도를
내년부터 삼성 등 증설 HBM 팹 가동되고 중국의 ‘반도체굴기’도 위협적
천문학적 이익 상당부분을 차세대 제품·공정과 생태계 강화에 투자해야
규제완화 등 투자환경 개선해 한국을 국내외 기업의 매력적인 투자처로

‘초과’라는 말부터 바로잡자
복잡한 논란일수록 정확한 정의가 먼저다. 우선 ‘초과이윤’이다. 기업 이익에 미리 정해진 적정선 같은 것은 없다. 그러니 ‘초과이윤’은 예상보다 많이 난 이익을 잘못 부른 이름일 뿐이다. 증시에서 쓰는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가 지금 상황에 더 어울린다. 물론 노력 없이 거둔 이익을 뜻하는 ‘횡재 이득(windfall gains)’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호황과 불황이 끝없이 교차하는 반도체 산업에서, 뼈를 깎는 혁신과 과감한 투자, 살벌한 경쟁을 견뎌 낸 생존자의 이익을 ‘저절로 떨어진 홍시’로 볼 수 있을까. 이익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노력 없는 소득으로 취급하면, 앞으로의 노력도 기대하기 어렵다. 초과이윤 환수나 횡재세 논의의 접근방식 자체가 부적절한 까닭이다.

‘초과세수’도 짚어봐야 한다. 예상보다 세금이 더 걷혔다는 뜻일 뿐, 정부가 쓸 돈이 넘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국은 2020년 이래 해마다 100조원이 넘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내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세출을 줄이는 대신 재정을 적극 집행해 성장동력을 끌어올리고 구조적 세수 증대를 꾀하는 길을 택했고, 대통령의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같은 용도가 아니라면 초과세수의 재정 추가 집행 명분도 줄어든다.

분명히 해 둘 점이 있다. 정부가 초과세수의 쓰임은 정할 수 있어도, 세금을 낸 기업의 이윤에 직접 손댈 수는 없다. 최근 ‘사회연대임금제’를 거론한 노동부 장관도 그 선만큼은 분명히 그었다. 정부가 기업의 행동에 영향을 줄 길이 없지는 않다. 다만 투명하고 성장친화적으로 설계될 때만 의미가 있다. 기업의 팔을 비트는 방식이 되면 득보다 실이 크다. 결국 정부가 할 일은 둘이다. 늘어난 세입을 성장 효과가 가장 큰 곳에 쓰는 일, 그리고 기업이 늘어난 이익을 생산적으로 재투자하도록 이끄는 일이다. 반도체에서 출발해 산업과 거시경제로 시야를 넓혀 보자.

반도체 재투자가 최우선
반도체 경기에는 사이클이 있다. 3~5년 상승기 뒤에는 어김없이 하락기가 왔다. 2024년 시작된 이번 호황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가 폭증하며 역대 최고 수요를 누리고 있다. AI 혁명으로 사이클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는 견해도 있으나, 그럴 가능성은 작다. 불황은 수요가 줄어서가 아니라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을 때 시작되기 때문이다. 호황기 증설 규모가 클수록 뒤에 올 불황의 골도 깊어진다. 기업들도 이를 모르지 않지만, 역대급 가격 상승 앞에서 증설을 자제하기란 어렵다. 실제로 2027년부터 삼성·하이닉스·마이크론의 증설 HBM 팹이 속속 가동될 예정이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각국은 반도체 자급력 확대에 발 벗고 나섰고, 공급 부족은 특히 중국에 ‘반도체 굴기’의 기회가 되고 있다. 창신메모리(CXMT)와 양쯔메모리(YMTC)는 이번 특수로 규모의 경제를 누리며 D램과 낸드의 주요 공급자로 떠오를 전망이다. 과거 삼성전자가 불황기에 오히려 공격적으로 확장해 경쟁자를 밀어냈듯, 정부를 등에 업은 중국 기업들은 다음 불황기에 같은 전략을 더 손쉽게 구사할 것이다. 지금은 관세까지 면제하며 반도체 확보에 나선 미국도, 그때쯤이면 마이크론을 앞세워 다시 장벽을 높일 수 있다.

비관적 시나리오를 펴는 것은 겁을 주려는 게 아니다. 앞선 기술력과 생산력만 지킨다면 반도체가 호르무즈해협 못지않은 버팀목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 선두를 지키려면 지금의 천문학적 이익 상당 부분을 차세대 제품·공정과 생태계 강화에 다시 투자해야 한다. 정부도 기업이 그런 선택을 하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산업정책으로 반도체 생태계 키워야
반도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늘어난 세수를 더 넓은 산업에 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선순위의 기준이 필요하다. 첫째, IMF 연구에 따르면 기반 없는 산업을 새로 키우기보다 이미 비교우위를 가진 산업과 그 공급망을 키우는 편이 효과가 크다. 부족한 곳을 메우는 투자도 필요하지만, 강점을 더 키우는 일이 먼저라는 것이다. 둘째, 지원은 시장실패가 있거나 민간 혼자 하기 어려운 분야에 집중돼야 한다. 셋째, 국제질서의 변화로 경제안보 관점의 정책 필요성이 커졌다. 넷째, 정부의 전방위 지원을 업은 중국 기업이 우리 산업의 영역을 거침없이 잠식하는데, 그 대응을 기업에만 떠맡길 수는 없다.

이 네 조건을 두루 충족하는 분야부터 배분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목록의 맨 위는 반도체, 그중에서도 소재·장비·후공정·비메모리일 것이다. 메모리는 세계 1위지만,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나머지 생태계는 여전히 열세다. 개별 기업이 공급망 전체를 떠안기란 불가능하고, 연구개발(R&D)과 인력 양성의 결실은 생태계 전반으로 퍼진다. 여기에 경제안보를 더하면 첨단 생태계의 국내 확보는 더욱 절실해진다. 중국의 경쟁사는 아직은 덜 위협적이지만, 중국 정부가 쏟아붓는 노력을 떠올리면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본보기도 있다. 2023년 반도체 국가전략회의에서는 삼성·SK가 장비를 기증하고 정부가 세액공제를 더하는 방식으로, 벨기에 imec을 본뜬 첨단반도체기술센터(ASTC) 설립을 추진했다. 예산에 막혀 멈춘 이 프로젝트를 되살릴 적기가 바로 지금이다.

진짜 과제는 국내 투자 환경 개선
반도체 초호황을 둘러싼 우려 가운데 하나는 ‘네덜란드 병’이었다. 1959년 네덜란드가 대형 가스전을 발견해 외화가 쏟아져 들어오자, 통화가치가 올라 제조업 등 다른 수출산업의 경쟁력이 꺾인 현상이다. 반도체만 잘 나가고 나머지 산업은 쇠락하는 ‘K자형 양극화’가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걱정이다.

그러나 메커니즘부터 정확히 봐야 한다. 네덜란드 병의 핵심은 통화가치 상승에 따른 가격경쟁력 하락이다. 우리로 치면 경상수지 흑자가 환율을 지나치게 끌어내릴 때 생긴다. 그런데 원·달러 환율은 떨어지기는커녕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아직은 반도체 호황이 다른 수출산업의 발목을 잡는 국면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고환율은 수입물가를 밀어 올리고 내수를 위축시켜 서민경제를 악화시키고 양극화를 키운다. 단기 요인을 빼면, 고환율의 구조적 배경은 해외투자 수요의 확대다. 이른바 서학개미도 한몫하지만, 우리 기업이 벌어들인 달러를 국내로 잘 들여오지 않는 현상에 더 주목해야 한다. 일본을 보라. 2021년 이후 엔화가 50% 넘게 떨어진 초엔저 속에서도 기업들은 번 달러를 본국으로 들이지 않았다. 자국 내에는 돈 벌 기회가 적고, 이미 자리 잡은 해외법인에 재투자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해서다. 이윤과 주가는 올랐어도 설비투자와 고용 등 국내 파급효과는 미미했다.

지금의 고환율 지속은 일본이 앞서 겪은 미래의 예고편일지 모른다. 게다가 대미 통상협상의 후속으로 3500억 달러 투자 약정이 남아 있고, 미·이란 종전에 따른 3000억 달러 재건기금에도 우리 기업의 참여가 거론된다. 해외투자 압력은 커질 일만 남았다.

‘K자형 양극화’를 걱정해 기업 이익의 재분배를 강화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그런 정책은 자본이 국내로 돌아오지 않을 유인만 키운다. 근본 해법은 국내 투자 환경의 개선뿐이다. 우리 기업은 물론, 한국 산업의 경쟁력에 눈독을 들이는 외국 기업에도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도록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인프라 투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것이 고환율·고물가를 풀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 반도체 초호황의 열매를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게 하는 길이다.

분배가 아니라 재투자, 그리고 그 과실이 국내에 뿌리내릴 환경, 이것이 반도체가 안긴 호기를 미래의 동력으로 바꾸는 길이다. 초호황에 취해 시간을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권남훈 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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