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열리고 있는 ‘6·3 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국정조사’에서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은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만 연발했다. 직원 3000명, 예산 4800억원의 공룡 기관 전직 수장의 답변이 이렇게 후안무치한 데는 까닭이 있다. 대법관 겸임하면서 한 달에 한번 회의만 나오고 수백만원 수당을 챙기는 선관위원장은 선관위의 ‘바지사장’일 뿐이기 때문이다.
선관위 업무, 사무총장이 95% 전결
노태악, 간부도 안간 해외출장 개근
야당 추천 특검만이 복마전 잡을 길
선관위 상임위원을 지낸 전직 고위 관계자 전언이다. “선관위 들어와 경악한 게, 업무의 95%를 사무총장이 전결하더라. 선관위원장 주재 위원회엔 극히 일부 현안만 올라온다. 상임위원의 결재권도 비상임위원의 권한처럼 초라하며, 5%뿐인 위원장 결재권조차 사무처가 준비한 초안에 형식적으로 서명하는 수준이다. 이런 위원장을 방패 삼아 사무처는 감사조차 제대로 안 받고 인사·재정을 맘대로 굴리는 철밥통으로 지내온 거다”
한데 바지사장에 불과했던 노 전 위원장은 7000만~9000만원의 세금으로 해외출장은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그는 2023년 중앙일보 보도로 선관위 사무총장, 차장의 자녀 특혜채용 의혹이 폭로돼 사퇴위기에 몰렸는데도 ‘뼈를 깎는 개혁’ 약속과 감사원 감사 수용을 조건으로 자리를 지켰다. 당시 김필곤 상임위원은 “이런 위기 상황에서 수천만원씩 드는 해외출장은 안 간다”고 결정했고 김용빈 사무총장과 다른 선관위원들도 출장을 중단했다. 노 전 위원장은 이를 몰랐을 리 없는데도 2022년 호주·뉴질랜드, 24년 독일·에스토니아, 25년 덴마크·스웨덴에 부부동반 출장을 간 거다. 전직 선관위 관계자의 말이다. “선관위원장은 ‘5부 요인’이라 별도 출장 예산이 책정돼 있고 배우자 동반은 ‘헌법기관 관례’라고 해 말릴 수 없었다. 알아서 안 가셔야 하는데, 전혀 마다하지 않으시더라”
이런 수뇌부 아래 선관위 사무처는 정치권 유착 행태를 일삼아왔다. 전직 선관위 고위 관계자 말이다. “선관위는 ‘국회 대응’이란 명분 아래 국회에 사무소를 두고 의원들 민원 처리에 역량의 대부분을 소진한다. ○○○ 의원이 선거법 문의를 해오면 중앙사무처에 즉각 연락해 해당 지역구 선관위에서 응답하게 해준다. 그 속도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 때 대응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르다. 그러면서 직원들이 밤에 의원실과 술 마시고 인맥을 튼다. 봐주기식 단속과 인사 청탁 거래 우려가 안 나올 수 없다. 선관위에서 끗발 있는 조직이 법제국 해석과이다보니 전국 선관위 직원들은 과천 중앙선관위에 오려고 줄을 서고 한번 오면 7년, 10년씩 버티며 승진해 간부가 된다. 이 과정에서 특정 정당 유착 가능성이 커진다. 반면에 투개표 실무 일선 시군구 선관위는 인사 점수 낮아 밀려난 인력으로 채워진다. 선관위가 아니라 ‘정치권의 시녀’더라. 선거 관리가 탈이 안 날 수 있겠는가?”
다른 전직 고위관계자 전언에 따르면 선관위 직원들의 선거법 이해 수준도 한참 미달이다. “승진 시험에 선거법이 있는데, 질문도 답안도 엉터리더라. 물어보니 ‘그냥 달달달 외웁니다’고 한다. ‘안철수당’은 안 되고 ‘조국혁신당’은 된다는 기괴한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선거관리 아니라 로비 잘하는 직원이 승진하는 구조니 이런 현상은 당연하다.”
이뿐이 아니다. 선관위는 ‘정당 역량 강화’란 명분으로 정당 당직자들에게 해외여행까지 시켜줘 왔다. ‘외국 정당 정치 제도 연수’란 이름 아래 2022년엔 민주당 5명, 국민의힘 4명 등 원내 정당 당직자 13명과 선관위 직원 4명 등 17명이 1억원 예산을 들여 뉴질랜드·호주를 8박 9일 다녀왔다. 2023년에도 민주당 4명, 국민의힘 3명 등 정당 당직자 10명과 선관위 직원 4명 등 14명이 독일·벨기에·네덜란드를 7박 8일 다녀왔다. 8900만원이 들었단다. 당직자 출신 국민의힘 전직 의원은 “역량 강화? 외국서 놀고 들어오는 거다. 선관위가 정당에 선심 쓰며 유착하는 수단”이라고 했다.
이 프로그램은 선관위가 인사 비리로 감사원 감사를 받게 된 2023년 이후엔 기재부가 예산을 없애 중단됐지만, 올해 예산이 부활돼 8000만원이 책정돼 있다고 한다. 선관위는 “우리가 아니라, 국회에서 요구해 부활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누가 했건 기가 막힐 따름이다.
수사권 없는 국정조사로는 복마전 선관위의 비리를 절대 밝혀낼 수 없다. 선관위를 감싸온 민주당 정권 대통령이 꺼낸 검경 합수부 조사도 믿기 어렵긴 마찬가지다. 선관위 의혹을 남김없이 밝혀낼 길은 특검, 그것도 야당 추천 특검뿐이다. 민주당이 특검을 반대하면 선관위와 한통속이란 비판을 입증하게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