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병원을 찾는 이유 1위는 치아·잇몸과 관련된 치주 질환이다. 칫솔질을 잘해도 매년 스케일링을 받지 않으면 잇몸 염증으로 입 냄새가 나고 잇몸이 붓고 피가 난다. 이순임(대한치과의사협회 이사) 카라치과의원 원장은 “입속 세균이 증식해 만들어지는 플라크가 치아와 잇몸 경계 부위에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 치주 질환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면 치주 질환으로 치아가 빠져 저작력이 떨어진다. 한 노인종합복지관 식당에서 어르신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 신원섭 기자
그런데 진지발리스균·뮤탄스균처럼 충치나 치주 질환을 유발하는 입속 세균은 입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염증으로 부어오른 잇몸 혈관을 타고 뇌·심장까지 침투한다.
학계엔 잇몸 염증이 심할수록 뇌가 쪼그라들고 심장이 변형된다는 내용의 연구가 쌓이고 있다. 김현주 서울대치과병원 원스톱협진센터 교수는 “잇몸 염증으로 치아가 많이 빠진 사람일수록 기억력을 관장하는 뇌의 해마 위축이 빠르게 진행됐다”고 말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45세 이상 6000여 명을 26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치주 질환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치매에 걸릴 위험이 22%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입속 세균은 심장을 공격해 돌연사 위험을 높인다. 2025년 12월 ‘BMC 구강 건강(BMC Oral Health)’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치주염이 있는 사람은 급성 심근경색 발생 위험이 약 84% 높았다. 치아 X선 검사에서 잇몸뼈 손실이 확인될 정도로 잇몸 염증이 심한 그룹의 심근경색 위험도는 최대 8.85배까지 치솟았다.
잇몸 염증이 심할수록 뇌가 쪼그라들고 심장이 구조적으로 변형된다는 연구가 쌓이고 있다. 구강보건의 날 행사에서 올바른 양치질 방법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신체 노화를 늦추는 역노화의 핵심 조건 중 하나가 저작력이라고 강조한다. 조준호 서울대치과병원 치과보철과 교수는 “치아를 지켜야 뇌도 심장도 지킬 수 있다”고 말한다.
사고나 충치·치주 질환 등으로 불가피하게 치아가 빠졌어도 수명을 지키는 방법을 알아본다. ‘놓치면 손해’라는 치과 진료도 소개한다. 껌을 씹어 뇌를 자극하는 게 뇌 인지 기능에 도움이 되는지도 살펴본다.
치아 빠지면 뇌 자극 줄어 치매 생겨
건강한 성인은 28개 영구치를 가지고 있다. 비뚤게 나면 뽑기도 하는 사랑니 4개를 제외한 개수다. 영구치는 평생 써야 한다.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시기 잇몸에 탄탄하게 박혀 있던 치아를 잃기 쉽다. 50대 중반부터 충치, 치주 질환으로 영구치가 흔들거리다가 빠진다. 2019년 10월 국제 환경연구 및 공중보건 저널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50대 후반(55~59세)인 한국인의 잔존 치아는 평균 25.23개다. 60대 초반(60~64세)은 23.00개, 60대 후반(65~69세)은 21.24개, 70대 초반(70~74세) 18.87개, 70대 후반(75~79세)은 16.33개로 줄어든다.
저작력은 신체 노화를 늦추는 역노화의 핵심 조건 중 하나다. 어금니가 빠지면 음식을 씹을 때 뇌로 가는 감각 신호가 줄어 뇌 인지 기능이 떨어진다. 한 대형마트에 치약이 전시돼 있다. 사진 뉴스1
빠진 치아가 많을수록 음식을 앞니로 끊어서 어금니로 씹어 삼키는 ‘저작력’이 떨어진다. 조준호 교수는 “특히 어금니가 빠지면 씹기 힘든 고기·채소 섭취는 줄고 탄수화물 위주로 식단이 변하기 쉽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장수의 기본인 영양 섭취가 부실해진다.
또한 뇌 자극이 줄어 치매 발생 위험도 커진다. 정복영 연세대치과병원 통합치의학과 교수는 “식사 때 위아래 치아가 맞물려 단단한 음식을 씹어 먹는 행위는 그 자체로 뇌를 자극한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주식인 밥과 김치·나물·고기 등 다양한 음식을 먹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영구치는 20개(위아래 치아 각 10개씩)다. 남아 있는 영구치가 이보다 적으면 수명이 짧아진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치아 1개가 빠지면 사망률은 2%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치아·잇몸을 지켜야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저작력이 치매 예방에 중요하니 평소 껌을 씹는 것도 도움이 될까. 전문가들은 “별 효과 없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