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호성 남경무역 대표 중식 고급화로 백주 시장 7% 성장 중국 술은 존중·신뢰 상징하는 도구 술잔 종류·크기에도 동양철학 담겨
유호성 대표는 “양하(洋河)는 강소성의 맑은 물로 만들어낸 중국 8대 명주”라며 “부드러운 질감에 국내 소비자에게도 잘 맞는 술”이라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양하대곡, 양하대곡 청자, 양하블루, 양하골드, 해지람, 천지람. 유대표가 들고 있는 술은 몽지람. [사진 남경무역제공] [Gemini 생성 이미지]
요즘 ‘뜨는 술’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술잔을 들기 전부터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혹적인 이야기가 있다. 여기에 술의 개성을 극대화해 주는 음식이 곁들여지고, 시끌벅적한 회식 자리가 아니어도 혼자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매력이 더해진다. 와인이 그랬고, 위스키가 그 길을 걸었다.
국내에서 중국 백주도 서서히 존재감을 키우는 중이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HS코드 2208.90 기준)에 따르면 최근 중국산 백주의 수입 물량은 다소 감소했지만 수입 금액은 꾸준히 증가했다. 최근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7.5% 안팎이다. 리터당 수입 단가가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고가의 프리미엄 백주를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는 의미다.
백주는 수수(고량), 밀, 쌀 등을 누룩으로 발효한 뒤 증류해 만드는 중국의 전통 증류주다. 알코올 도수는 대체로 40도를 훌쩍 넘지만, 오랜 숙성을 거치며 과일 향과 꽃향, 곡물 향이 복합적으로 피어오른다. 명·청 시대 본격화된 중국의 증류 문화는 천 년 가까운 시간 동안 발전해 왔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역사와 전설, 철학을 술 한 병 안에 담아냈다.
중국 8대 명주 ‘양하’를 국내에 소개하고 있는 남경무역의 유호성 대표를 만났다. 진로에서 참이슬을 담당하며 국내 소주 시장의 성장을 경험했고, 이후 페르노리카 코리아에서는 발렌타인 등 글로벌 위스키 브랜드의 국내 안착을 이끌었다. 20여 년간 주류 업계 최전선에서 활동해온 그에게 한국 백주 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물었다.
Q : 수입 주류 시장 전체로 보면 최근 역성장 분위기도 있다. 백주 시장은 어떤가.
A : “전체 수입 주류 시장은 주춤하고 있지만 백주는 오히려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수입 주류 시장은 2022년을 기점으로 꺾여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역성장을 기록했다. 다만 최근 5년 평균으로 보면 여전히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주종별로는 와인과 맥주가 감소세를 보이는 반면, 위스키는 유행을 넘어 안정적인 소비층을 확보하며 구조적 성장 단계에 들어섰다. 백주는 아직 시장 규모는 작지만 최근 5년 평균 성장률이 7%대를 기록하며 의미 있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Q : 백주 성장의 배경으로 중식 파인다이닝을 꼽았다.
A : “중식의 고급화가 백주 시장 성장의 가장 큰 배경이다. 과거 중식당이 짜장면과 짬뽕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스타 셰프들이 이끄는 파인다이닝 영역으로 확장됐다. 음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술의 선택지도 다양해졌다. 특히 중식당은 룸 문화가 발달해 있어 중요한 접대 자리에서 새로운 백주를 소개하는 것이 일종의 환대와 신뢰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Q : 백주를 10년 전과 지금 비교하면 어떤 변화가 있나.
A : “대중 인지도는 비슷하지만 소비자의 관심은 훨씬 깊어졌다. 과거에는 연태 정도만 알고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스마트오더와 홈술 문화가 확산되면서 소비자들이 다양한 백주를 직접 찾기 시작했다. 연태를 넘어 브랜드와 향, 산지를 비교하며 선택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양하가 운영 중인 백주은행. 중국에서 술은 존중과 신뢰를 상징한다. [사진 남경무역제공]
Q : 중국 술에는 유독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A : “중국에서 술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관계를 만드는 매개체다. 대표적인 사례가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의 방중이다. 참모들은 52도짜리 마오타이를 조심하라고 만류했지만 닉슨은 저우언라이 총리와 술잔을 주고받았다. 중국에서 술은 존중과 신뢰를 상징하는 문화적 도구다.”
Q : 양하(洋河)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A : “양하는 자연환경과 전설, 역사가 함께 만든 술이다. 양하가 위치한 강소성 지역은 호수와 강이 만나는 풍요로운 수계 덕분에 예로부터 명주 산지로 꼽혔다. 명나라 말기 효녀와 은인에 관한 ‘미인천’ 전설도 전해진다. 건륭황제가 이 물로 빚은 술맛에 반해 머물렀고, 이후 황실 공물주로 지정됐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양하를 대표하는 서사로 남아 있다.”
Q : 양하의 양조 역사는 1400년에 달하지만 대표 브랜드는 비교적 최근에 등장했다.
A : “브랜드는 새롭지만 술을 만드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양하의 경쟁력은 ‘교(窖)’에 있다. 술을 발효시키는 땅굴로, 오랜 세월 축적된 미생물이 술맛을 결정한다. 몽지람 역시 최소 20년 이상 숙성한 원주를 블렌딩해 만든다. 브랜드의 역사는 짧을 수 있지만 술의 시간은 수백 년에 걸쳐 이어져 온 셈이다. 백주는 일반적으로 장향·농향·청향으로 나뉜다. 양하는 농향형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을 강조해 ‘면유형’이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솜처럼 부드럽게 넘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Q : ‘백주 은행’이라는 개념도 흥미롭다.
A : “중국인에게 백주는 소비재가 아니라 시간을 담는 자산이기도 하다. 양하 본사에는 개인 소유의 술 항아리를 장기 보관하는 ‘백주 은행’이 있다. 중국에는 딸이 태어나면 술을 묻어 두었다가 결혼식 날 꺼내는 ‘여아홍(女兒紅)’, 아들이 장원급제를 하거나 큰 경사를 맞았을 때, 개봉하는 ‘상원홍(狀元紅)’ 문화가 있다. 술은 가족의 시간을 기록하는 매개체이며, 오래 숙성될수록 가치가 높아져 투자 자산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Q : 술잔에도 철학이 담겨 있다고 했다.
A : “백주 문화는 술보다 관계에 더 큰 의미를 둔다. 처음 만난 사람과는 속이 보이지 않는 도자기 잔으로 술을 나눈다. 아직 서로를 다 알지 못한다는 의미다. 세 잔을 함께 마신 뒤에는 유리잔으로 바꾼다. 서로를 투명하게 드러낸다는 뜻이다. 술잔의 크기와 숫자에도 조화와 순환을 중시하는 동양 철학이 녹아 있다.”
1972년 방중한 닉슨 대통령과 저우언라이 총리. [사진 남경무역제공]
Q : 백주는 어떤 ‘씬(Scene)’의 술이라고 보나.
A : “와인이 데이트의 술이라면 백주는 우정의 술이다. 백주는 함께 경쟁하고 협력하며 관계를 다지는 자리에서 더욱 빛난다. 최근에는 젊은 소비층과 여성 소비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중국 드라마 속 전문직 여성들이 백주를 즐기는 모습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권위적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소비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Q : 앞으로 한국 백주 시장은 어디로 가야 할까.
A : “이제는 ‘연태만 아는 시장’에서 벗어나야 한다. 소비자들이 백주의 다양한 브랜드와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도록 시장 저변을 넓혀야 한다. 무엇보다 강한 브랜드를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술 한 병에 담긴 수백 년의 역사와 문화, 철학이 제대로 알려진다면 백주는 충분히 다음 주류 트렌드의 한 축이 될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