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청 대전’은 기이한 조어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 간의 ‘대전(大戰)’은 한국 정치에선 없던 개념이었다. 비공개적 압박과 소극적 저항이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젠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내는 지경까지 갔다.
“서로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된 거다. 다시 합치더라도 쇼윈도 부부일 뿐이다.”
정권 출범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전례 없이 치닫는 대통령과 집권 여당 대표의 갈등을 두고 여권에서 나오는 말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불과 4년 전만 해도 ‘친명 원팀’으로 통했다. 하지만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 대통령 주변에서 “정 전 대표가 연임에 도전해선 안 된다”고 공개 발언하는데도 정 전 대표는 개의치 않고 도전에 나서는 모양새가 됐다. 반도체의 호남 유치나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 등의 정책적 결정도 당원 표심 잡기용으로 해석될 정도로 총력전 양상이다. 도대체 둘은 어디서 틀어진 것일까.
그래픽=남미가 기자
이 대통령, 6·3 지방선거 놓고 “성공 아니다”
정 전 대표 측근은 2021년 민주당 대선 경선 얘기를 꺼냈다. 이 측근에 따르면 정 전 대표는 초반에는 당시 이낙연 후보를 지지했다고 한다. 그는 “은근해서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몰랐다”고 했다. 그때 이 대통령 참모진 사이에선 ‘정청래는 언제든 돌아설 수 있는 사람’이란 의구심이 생겼을 수 있다고 한다.
2022년 8월 전당대회 이후 두 사람은 당 대표와 수석최고위원으로 호흡을 맞추게 된다. 전대 과정에서 정 전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 정청래 당 대표가 꿈이었다”고 강성 친명 행보를 이어갔다. 이듬해 9월 당시 대표였던 이 대통령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그는 “같은 당 국회의원들이 자기 당 대표를 팔아먹었다”고 했다. 정 전 대표가 법사위원장을 맡은 후 둘이 더 긴밀해졌을 수 있다. 지난해 5월 대법원이 당시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정 전 대표는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 추진 등을 주도하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당시 의총에서 정 위원장은 ‘조희대가 굉장히 위험하다’고 주장했지만 (친명계 의원들은) ‘조 대법원장이 판을 뒤집을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보고했었다”며 “결과적으로는 정청래 판단이 더 정확했던 셈”이라고 전했다.
둘의 관계가 어느 정도인지 시험하는 일이 이내 벌어졌는데 지난해 8월 전당대회였다. 친명계 의원들은 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박찬대 의원 뒤에 섰다. 결과적으론 정 전 대표가 큰 격차로 승리했다. 이 대통령은 선호를 드러내지 않도록 주의했었다.
둘의 거리감은 올 들어 뚜렷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 전 대표가 올해 1월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을 공개 제안한 일이다. 당내 반발이 커지자 그는 “청와대와 조율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나 비공개 자리에서 “기자회견까지 열어 공식화하라는 취지는 아니었는데 마치 내 의지인 것처럼 합당 이슈를 띄웠다”고 했다고 한다. 한 친명계 의원은 “조국 전 대표 사면·복권을 전후해 관련 논의가 있었던 것은 맞지만 정부·여당이 서둘러야 할 이유는 없었다”며 “김민석 국무총리가 조국을 많이 견제해온 만큼, 정 전 대표로선 오히려 조 전 대표를 끌어들여 여권 내 3자 구도를 만들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놓고도 둘은 온도 차를 드러냈다. 이 대통령은 “예외적인 보완수사권은 필요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정 전 대표는 “검찰개혁의 마침표는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라고 했다. 친명계 의원들 사이에선 “이재명 정부의 성공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정치적 생존만 꾀한다는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청래 “국민은 영원, 정권은 짧다” 갈등 키워 명·청 갈등이 수면 위로 본격화한 것은 6·3 지방선거 직후다. 이 대통령은 지난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최소한 성공은 아니다”고 평가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정 전 대표를 향한 사실상의 ‘불신임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다음날 이 대통령의 순방 출국 행사에 정 전 대표가 불참하면서 ‘환송 패싱’ 논란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은 영원하고 정권은 짧다”고 해 갈등을 키웠다. 정 전 대표는 26일 당선인 워크숍을 앞두고 “대통령을 흔든다는 비판이 있다”고 묻자 “이재명 대통령을 흔들면 안 된다. 누가 흔드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둘의 긴장은, 정 전 대표와 김민석 총리와의 사사건건 충돌로 나타나고 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은 강성 지지층과 ‘내란 종식’ 프레임에 매몰된 민주당에 경고장을 보냈지만, 이번 전당대회는 그 경고에 답하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