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현지시간) 오후 10시. 이탈리아 로마에 거주하는 박이태 재이탈리아 한인회 로마 가이드협회장의 휴대전화에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이탈리아 관광부(Ministero del Turismo)의 국장이라고 소개한 수화기 너머의 남성은 “한국인 사회의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다”며 “양국 간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관광 분야의 양자 협정을 체결할 준비가 돼 있다. 7월 초 다시 연락해 구체적인 내용을 논의하자”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와 통화했다는 사실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전달해 달라”고 덧붙였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지난 1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의 한 호텔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 앞서 화동에게 꽃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 회장은 전화를 끊은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이탈리아 정부는 물론 한국 정부에도 줄기차게 제기해 왔던 이탈리아 한인 가이드의 숙원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지난 25일 통화에서 “관광부 국장의 연락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그동안엔 길이 막혀 있었다. 이것이 바로 해외에 사는 우리 동포들이 겪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튿날 박 회장은 이탈리아를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주최한 동포 간담회에 참석해 “공인가이드 자격증 민원에 대해 휴일임에도 어제 이탈리아 측에서 연락이 왔다. 대통령의 방문이 이탈리아 한인사회에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조르자 멜로니 총리의 일 처리 속도가 놀라울 정도”라며 “한국의 이재명 정부도 빠르다고 정평이 나 있는데 멜로니 정부는 더 빠른 것 같다”고 답했다.
박이태 이탈리아 로마 한인 가이드협회장이 지난 15일(현지시간) 이재명 대통령이 주최한 이탈리아 동포 간담회에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박이태 회장
‘이탈리아 공인 관광가이드 국가자격증’ 문제는 지난 12일(현지시간) 이 대통령과 멜로니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언급됐다. 이탈리아의 연간 한국인 관광객은 100만명에 달하는 데 반해, 한국어 안내가 가능한 공인가이드는 턱없이 부족하고 한인이 이탈리아 공인가이드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길도 너무 좁다는 게 이 대통령의 지적이었다. 공인가이드 국가자격시험은 2013년 이후 12년 동안 공고조차 없다가 지난해 11월 재개됐지만, 응시자 약 1만8000명 중 필기와 구술 시험을 통과한 최종 합격자는 230명에 불과했다. 이탈리아 역사와 문화는 물론 이탈리아어 구사에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이탈리아 한인사회에서는 “지구상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 중 하나”로 통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 한인사회에서는 공인가이드 자격 없이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암암리에 가이드를 제공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이탈리아는 공인 자격 없이 유료 가이드 투어를 제공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한인 동포들의 관광가이드 자격증 취득 기회를 확대해 달라”는 민원은 지난해 10월 이탈리아를 방문한 우원식 당시 국회의장은 물론,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 등 공관을 통해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청에 접수됐다. 마침 그 무렵 이 대통령이 해외 동포사회 민원에 대한 전수조사를 지시한 덕에 해당 민원은 이탈리아 국빈 방문에 앞서 청와대에 방문국 주요 민원 중 하나로 보고돼 정상회담 테이블에 오를 수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 1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총리 영빈관에서 소인수 회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 대통령은 지난 17일 X(옛 트위터)에 “오히려 멜로니 총리가 먼저 관련 사항을 잘 알고 있으며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겠다는 뜻을 밝혀줬다”며 “동포 여러분께서 어디에 계시든 우리 국민으로서 존중받으며 당당하게 일하실 수 있도록 앞으로 더 세심하게 살피고 노력하겠다”고 썼다. 이탈리아 한인 2세대로 이름도 ‘이태리’에서 따온 ‘이태’인 박 회장은 “앞으로 더 많은 한인 관광가이드가 정식 자격을 취득하고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된다면 이탈리아 한인사회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군 복무를 했지만 한국에 뿌리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