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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선수가 벤치에?…박지성 11명 뛰는 듯, 달랐던 日축구의 비밀

중앙일보

2026.06.27 19:30 2026.06.28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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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축구대표팀 가마다 다이치(왼쪽)가 튀니지전에서 골을 터트린 뒤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일본축구대표팀 가마다 다이치(왼쪽)가 튀니지전에서 골을 터트린 뒤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북중미 월드컵에서 한·일 축구의 희비는 그 어느 때보다 극명하게 갈렸다. 한국이 32강행을 위해 다른 나라 결과에 운명을 맡기는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사이, 일본은 죽음의 F조를 1승 2무로 당당히 통과했다. 네덜란드(2-2)와 스웨덴(1-1)와 비겼고, 튀니지를 대파(4-0)했다. 단순히 성적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축구의 시스템과 인프라, 확고한 철학은 한국축구에 거대한 무력감과 뼈아픈 교훈을 던진다.

일본은 대회 전 미토마 가오루(브라이턴), 미나미노 타쿠미(모나코), 엔도 와타루(리버풀)가 부상으로 낙마했고, 구보 다케후사(레알 소시에다드)마저 1차전에서 무릎을 다쳤다. 한국으로 치면 손흥민·이재성·황인범·이강인이 동시에 전력에서 이탈한 셈이다. 핵심 선수들이 대거 빠졌는데도, 팀은 휘청이지 않고 평균치를 유지한다.

부러운 장면은 벤치에서도 나온다. 코치는 일본 레전드 나카무라 슌스케와 하세베 마코토다. 부상으로 빠진 미나미노는 벤치에서 멘토 역할을 자처했고, 은퇴한 베테랑 요시다 마야까지 서포트 선수로 동행했다. 재일동포 축구 전문가 신무광씨는 “한국으로 비유하면 박지성과 이영표가 대표팀 일원으로 함께하는 셈이다. 마치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돌아와 전장에 함께 서있는 장면 같다”고 했다. 반면 한국축구 레전드들은 현장이 아닌 유튜브에서 날 선 쓴소리를 뱉어내고 있다.

일본을 8년째 이끌고 있는 모리야스 감독. 로이터=연합뉴스

일본을 8년째 이끌고 있는 모리야스 감독. 로이터=연합뉴스

2022년 월드컵 16강행을 이끈 파울루 벤투 감독과 결별한 한국과 달리, 일본은 2018년부터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 체제를 8년째 유지하며 전술적 연속성을 이어오고 있다. 지고 있는데도 벤치에 무기력하게 앉아있던 홍명보 한국 감독과 달리, 모리야스 감독은 화이트보드에 남은 시간을 분 단위로 적어가며 열정적으로 지시하는 ‘극과 극’ 리더십을 보였다.

대한축구협회가 불공정 감독 선임 논란으로 팬들 신뢰를 바닥까지 떨어뜨리는 동안, 2005년 ‘일본의 길 프로젝트’를 시작한 일본축구협회(JFA)는 “2050년까지 월드컵 우승”이라는 대업을 향해 진군 중이다.

많은 비용을 감수하고 19세 이하 대표팀 선수들을 훈련 파트너로 현장에 동행시켰다. 큰 꿈을 심어주려는 취지다. 한국이 동행시킨 훈련 파트너는 강상윤(전북)과 윤기욱(서울) 2명에 불과하다. 일본 도쿄대와 쓰쿠바대 학생 40여명은 일본 대표팀 분석관 산하에서 48개국 전력분석을 한다. 대표팀의 승률을 0.1%이라도 높이기 위한 일본 특유의 집요함이다.

북중미 월드컵 죽음의 조를 당당하게 통과한 일본축구대표팀. 로이터=연합뉴스

북중미 월드컵 죽음의 조를 당당하게 통과한 일본축구대표팀. 로이터=연합뉴스

2002 월드컵 당시 일본 대표팀을 이끌었던 필립 트루시에 감독은 “유럽 1~2부 리그에 최소 30명 정도가 뛰어야 일본이 월드컵 8강도 노릴 수 있다”고 예언했다. 현재 유럽 무대에서 활약 중인 일본 선수는 100명이 넘는다. 이번 월드컵 최종 명단 26명 중 23명이 유럽파다. 평소 빅리그에서 거칠게 부딪히다 보니 월드컵의 중압감 속에서도 유럽 팀을 향한 두려움이 없다. 실제로 일본은 최근 유럽 팀을 상대로 8승 3무, 11경기 연속 무패다. 제물 중에는 독일과 잉글랜드도 포함됐다.

꿈과 인생 경험을 중시하는 일본 선수들은 사무라이처럼 도전적으로 유럽에 나간다. 돈과 안정을 쫓아 중동이나 중국으로 향한 한국 선수들과 대조적이다.

일본축구협회는 독일 뒤셀도르프에 유럽 사무소를 두고 독일과 스페인이 1명씩 주재 직원을 파견해 선수들을 밀착 지원한다. 한국도 수년 전 벤치마킹하겠다더니 함흥차사다. 일본 선수들은 아기자기한 패스 축구 ‘스시타카(스시+티키타카)’를 펼쳤으나 이제는 과거의 한국처럼 몸싸움에도 두려움이 없다.

한국축구 레전드 박지성과 차범근. 강정현 기자

한국축구 레전드 박지성과 차범근. 강정현 기자


기성용은 “(박)지성이 형이 11명 뛰고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박지성은 “우리가 먼저 앞서나가고 있었는데 추격하는 입장이 돼 속상하다”고 했다. 안정환은 “얄미울 정도로 거만함이 느껴지는 건 자신감의 증거”라고, 차범근은 “이제 일본은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 됐고,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했다.

일본은 오는 30일 32강전에서 브라질과 맞붙는다. 일본은 지난해 10월 평가전에서 브라질에 3-2 역전승을 거둔 적이 있다. 수비수 스가와라 유키나리(브레멘)는 “우리는 즐기러 온 게 아니라 우승하러 왔다”는 담대한 포부를 밝혔다. 기본과 시스템을 잃어버린 채 표류하는 한국은 감히 “우승”이라는 단어조차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박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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