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현지시간) 기준 최소 1430명의 사망자를 낸 베네수엘라 지진을 놓고 사실상 국가실패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 체제 친미 과도정부는 구조대 투입 지연과 현장 통제 혼선 등 역량 부족을 드러냈다. 우고 차베스,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 시절 방치된 재난 대책도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꼽힌다.
27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구조대원들이 강진으로 파손된 건물 내부를 수색하며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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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1430명·실종 신고 6만8900명…1900년 이후 최강급 지진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당국은 지난 24일 발생한 규모 7.2와 7.5의 연속 강진으로 최소 1430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했다. 전날(26일) 확인된 사망자는 920명이었지만 추가 수색이 이뤄지면서 하루 만에 500명 이상이 늘었다. 가족들이 신고한 실종자만 최소 6만8900명에 달해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지진이 수도 카라카스와 북부 해안 라과이라주 등의 건물 밀집 지역을 때리면서 피해가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신들은 특히 미국 지질조사국(USGS)이 두 번째 지진의 규모를 7.5로 측정한 점을 들어 “이번 지진은 1900년 산나르시소 지진 이후 베네수엘라를 강타한 최강급 재난”이라고 평가했다.
경제적 피해 규모도 상당하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이번 지진에 따른 직접 물적 피해를 베네수엘라 국내총생산(GDP)의 약 6%인 67억 달러(약 10조원)로 추산했다. 여기에 도로·공항·전력망 복구와 생산 차질, 장기 재건 비용까지 포함하면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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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시간 골든타임 지나…맨손으로 잔해 파헤친 주민들
27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라과이라주 카라바예다에서 구조대원들이 연속 강진으로 붕괴한 건물 잔해 속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인명 구조의 분수령으로 꼽히는 72시간이 한국시간 기준 28일 오전 8시를 기준으로 지나면서 구조 현장의 긴박함은 더 커지고 있다. 구조대가 제때 도착하지 않아 라과이라주 곳곳에선 주민이 직접 삽과 밧줄, 맨손으로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를 파헤치며 생존자를 찾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리과이라주 카라바예다의 한 주민은 AP통신에 “얼마 전만 해도 저 아래에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구조하려 하지 않았다”며 “우리가 여러 시신의 위치를 찾아냈는데도 수습을 돕지 않았다. 대체 무엇을 기다리는 것이냐”고 분통을 터드렸다. 로이터통신도 라과이라와 카라카스 일부 지역에서 가족과 자원봉사자들이 며칠째 생존자와 시신을 직접 끌어내고 있다고 전했다.
현장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항 활주로와 주요 도로가 파손된 도심 곳곳에선 구조 차량과 민간 차량이 뒤엉키며 심각한 교통 체증이 빚어졌다. 베네수엘라 당국은 허가증을 발급해 현장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입장이지만 허가증 발급이 늦어지면서 구조 인력의 진입도 지체됐다고 한다. 한 자원봉사자는 AFP통신에 “사람들을 구조하러 가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서 계속 기다리고만 있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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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정권 20년 가까이 누적된 재난 대응 공백
이번 재난이 로드리게스 정부의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로드리게스가 복구 과정의 실책이나 관리 실패의 얼굴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그녀의 정치적 미래를 좌우할 역풍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제사회의 지원을 현장의 성과로 이끌어내는 역량을 과도정부에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차베스·마두로 정권 시절 누적된 경제난과 공공서비스 약화가 피해를 키웠다는 시각도 있다. 1999년 차베스 집권 이후 베네수엘라는 석유 수입에 의존한 복지 확대, 주요 산업 국유화, 가격 통제, 미국 제재, 인플레이션이 겹치며 장기 침체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시설 보수와 재난 대응 체계가 무너졌다는 주장이다. 로이터는 “10∼15년간 이어진 경제 혼란과 800만 명 규모의 해외 이탈로 베네수엘라의 긴급 대응 역량이 약화됐다”고 짚었다.
현대적 내진 기준이 적용되기 전 지어진 건물이 사실상 방치된 점도 문제로 거론됐다. AP통신은 “1950~60년대 노후 콘크리트 건물, 부실 시공, 연약 지반, 저층부가 주차장 등으로 비어 있는 소프트 스토리 건물 구조가 대규모 붕괴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26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라과이라에서 주민들이 지진으로 붕괴한 건물 주변에 서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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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경보망 대신한 스마트폰, 구조견 ‘쓰나미’도 위안
국가 인프라가 붕괴된 상황에서 스마트폰 자체의 경보 시스템이 사실상 국가의 지진 경보망을 대신하는 일도 벌어졌다. 27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구글의 안드로이드 지진 경보 시스템은 이번 강진 당시 베네수엘라의 안드로이드폰 사용자 1140만 명에게 알림을 보냈다. 이 중 흔들림이 가장 강할 것으로 예상된 지역의 약 140만 명에게는 즉시 몸을 낮추고 대피하라는 최고 단계 경보가 전달됐다.
해당 시스템은 스마트폰에 내장된 가속도계가 먼저 도달하는 약한 지진파인 P파를 감지하면, 이를 구글 서버가 분석해 더 강한 S파가 도달하기 전 주변 기기에 경보를 보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카라카스에서 차를 타고 이동 중이던 주민 호세 플로레스는 “안드로이드폰에서 경보가 울린 지 6초 뒤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NYT에 말했다.
유기견 출신 보더콜리 구조견 쓰나미의 인공지능(AI) 합성 이미지. 베네수엘라 지진 구조작업에서 맹활약해 현지에서 화제를 모았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 캡처
‘쓰나미’라는 이름의 유기견 출신 보더콜리 구조견의 활약상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쓰나미는 카라카스의 아파트 붕괴 현장에서 잔해에 갇힌 고령 생존자의 위치를 찾아내 구조 작업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다고 한다. 쓰나미는 2023년 튀르키예 대지진 등에서도 수색 임무를 수행한 적이 있다.
유기견 출신 보더콜리 구조견 쓰나미의 인공지능(AI) 합성 이미지. 베네수엘라 지진 구조작업에서 맹활약해 현지에서 화제를 모았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 캡처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에선 “쓰나미의 활약이 1999년 바르가스 산사태 참사에서 37명을 구한 전설적인 구조견 ‘오리온’을 연상케 한다”며 쓰나미를 주인공으로 한 각종 인공지능(AI) 생성 게시물이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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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구조대 급파 및 추가 원조…공항 활주로 긴급 복구
한편 상황 수습을 위해 미국은 대규모 지원에 나섰다. WP는 27일 미 고위당국자를 인용해 “미국이 기존 1억5000만 달러 지원에 더해 이번 주 1억 달러 이상 규모의 추가 지원 패키지를 베네수엘라에 보낼 계획”이라고 전했다. 미 정부는 피해가 컸던 시몬 볼리바르 국제공항의 활주로 1곳을 응급 복구해 이동식 병원과 구호 물자 공수가 가능해졌고, 해군 상륙수송함 USS 포트로더데일도 투입됐다고 밝혔다. 버지니아와 로스앤젤레스 구조팀은 현장에 도착해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고 마이애미 구조대도 추가 합류할 예정이라고 WP는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