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프랑스·음바페, 랭킹 2위 아르헨티나·메시, 랭킹 3위 스페인·야말, 랭킹 4위 잉글랜드·케인(왼쪽부터). [AFP·AP=연합뉴스]
12일(한국시간) 북중미 월드컵 8강전이 열린 미국 캔자스시티 스타디움. 아르헨티나가 스위스를 3-1로 꺾은 뒤, 리오넬 메시(39·인터 마이애미)는 팬들과 함께 “점프하지 않는 자는 영국인(El que no salta es un ingles)”이라는 응원가를 불렀다.
1982년 영국과의 포클랜드 전쟁 당시 아르헨티나인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 마요 광장에 모여 일제히 점프하며 외친 구호다. 4년 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에서 아르헨티나가 잉글랜드를 2-1로 꺾은 뒤에는 대표적인 응원가로 자리 잡았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디에고 마라도나의 ‘신의 손’ 골과 60m 드리블 돌파 골로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를 무너뜨렸다. 축구 역사상 가장 논란의 골과 가장 아름다운 골이 한 경기에서 나온 순간이었다.
메시(가운데)가 스위스전 승리 후 팀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영국은 전쟁에서 이겼고, 아르헨티나는 축구에서 이겼다. 악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16강에서는 최고 스타 데이비드 베컴이 디에고 시메오네의 도발에 넘어가 보복성 발길질을 했다가 퇴장당했고, 결국 잉글랜드는 승부차기 끝에 무릎을 꿇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에서는 베컴이 페널티킥 결승골을 터뜨리며 아르헨티나에 설욕했다.
역사와 축구로 얽힌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가 월드컵 4강에서 다시 만난다. 아르헨티나는 이날 스위스와의 8강전에서도 짜릿한 ‘도파민 축구’를 선보였다. 이집트와의 16강전에서 0-2 열세를 뒤집고 3-2 역전승을 거둔 것처럼, 이날도 쓰러질 듯하다가 다시 일어섰다.
스위스의 브렐 엠볼로가 할리우드 액션으로 퇴장당하면서 아르헨티나는 11대10의 수적 우위를 점했다. 스위스는 식스백을 세우며 승부차기까지 버티려 했지만 연장 후반 훌리안 알바레스가 전성기 손흥민을 떠올리게 하는 환상적인 감아차기 골을 터뜨렸다. 종료 직전에는 라우타로 마르티네스가 쐐기골까지 보태며 승부를 끝냈다.
앞서 메시는 전반 10분 왼발 코너킥으로 알렉시스 맥 앨리스터의 헤딩 선제골을 도왔다. 월드컵 통산 최다 득점(21골) 기록 보유자인 메시는 월드컵 10경기 연속 골 도전은 무산됐지만,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20골-10도움 기록을 작성했다. 경기 도중 눈 부상을 입고도 공격을 진두지휘했다.
A매치 205경기를 뛴 메시는 고대하던 숙적 잉글랜드와 처음 맞대결하게 됐다. 양국의 마지막 A매치였던 2005년 당시 메시는 결장했다. 두 팀이 월드컵에서 맞붙는 건 24년 만이다. 아르헨티나 매체 TyC스포츠는 “분명 하늘의 디에고(마라도나)도 한 골 더 넣어달라고 애원할 것”이라고 전했다.
노르웨이를 상대로 멀티골을 터트린 벨링엄(오른쪽). AFP=연합뉴스
잉글랜드는 같은 날 미국 마이애미에서 노르웨이에 2-1 역전승을 거뒀다. 공격형 미드필더 주드 벨링엄(레알 마드리드)은 0-1로 뒤진 전반 추가시간 상대 선수 3명 사이를 뚫고 들어가 왼발 슛으로 동점골을 터뜨렸다. 이어 연장 전반 3분 팀 동료의 중거리 슛이 골키퍼를 맞고 흐르자 쇄도해 결승골까지 밀어 넣었다. 멕시코와의 16강전에 이어 또 한 번 멀티골을 기록한 벨링엄은 1958년 펠레(당시 17세)에 이어 월드컵 토너먼트에서 두 경기 연속 2골 이상을 기록한 역대 두 번째 최연소 선수가 됐다.
과거 잉글랜드를 침략했던 바이킹의 후예 노르웨이의 돌풍을 잠재운 잉글랜드 선수들은 오아시스의 ‘원더월’을 합창했다. 잉글랜드 팬들이 비틀스의 명곡 ‘헤이 주드’를 떼창할 때 주드 벨링엄은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오는 16일 오전 4시, 최고의 숙적이 펼치는 준결승이 끝난 뒤 어떤 응원가가 경기장을 울릴지 전 세계의 시선이 쏠린다.
한편 이번 북중미 월드컵 4강에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최상위 4개국이 모두 살아남으며 ‘꿈의 대진’이 완성됐다. 잉글랜드(4위)와 아르헨티나(2위)가 맞붙고, 반대편에서는 프랑스(1위)와 스페인(3위)이 15일 오전 4시 댈러스에서 격돌한다. 이번 대회에서 메시와 함께 나란히 8골을 터뜨린 킬리안 음바페(프랑스)는 라민 야말(스페인)과 차세대 축구 황제 자리를 놓고 진검승부를 벌인다. 야말은 비록 이번 대회 한 골에 그치고 있지만 현란한 드리블로 수비를 몰고 다녀 사실상 스페인 공격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