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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가고시마는 ‘좌절’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중앙일보

2026.07.12 08:18 2026.07.12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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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 도쿄총국장

유성운 도쿄총국장

5일 찾은 가고시마 시로야마 언덕 아래 동굴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유신 3걸 중 한 명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가 할복한 자리다. 그는 자신이 주도했던 메이지 정부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이곳에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가고시마가 중앙과 어긋났던 건 이전에도 있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도 사쓰마(현재의 가고시마현 일대)의 시마즈가는 패자인 서군에 섰다. 영지는 지켰지만, 이후 260여 년 동안 도쿠가와 막부의 핵심 권력에서는 비켜나 있어야 했다.

하지만 가고시마는 이러한 비극과 변방의 경험을 피해의 기억으로만 남겨두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중앙을 만든 변방’이라는 정체성을 완성했다.

가고시마 시내에 서 있는 오쿠보 도시미치의 동상. 유성운 기자

가고시마 시내에 서 있는 오쿠보 도시미치의 동상. 유성운 기자

거리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건 물론 유신의 주역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다. 하지만, 박물관과 기념관에선 이에 못지 않게 서양의 과학기술과 산업을 받아들이려 했던 사쓰마의 도전, 조시칸(造士館)을 중심으로 인재를 길러낸 과정, 번주 시마즈 나리아키라(島津斉彬)가 증기선과 대포, 방적 등을 도입하며 근대화의 토대를 닦은 역사를 함께 보여준다. 중앙 권력으로부터 멀어진 변방이니 가능했던 일이었다.

국금(國禁)도 무릅쓰고 영국으로 건너간 ‘사쓰마 스튜던트’도 전면에 내세운다. 가고시마에서 영국까지의 항해로를 소개하면서, 이들이 귀국 후 일본의 교육·외교·경제를 이끌었다는 점을 연결해 설명한다. 가고시마에서 만난 한 남성은 “지금의 일본을 만든 것은 사쓰마”라고 했다.

최근 고교 야구팀의 ‘5·18 조롱’과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으로 호남이 논란에 중심에 섰다. ‘호남 차별론’으로 귀결되는 논란이다. 오랜 기관 중앙에서 소외됐던 건 맞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9명의 대통령 중 4명의 대통령을 탄생시킨 호남을 ‘소외’와 ‘설움’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정서도 적잖다.

호남의 서사를 소외와 피해의 언어로만 설명하기보다 ‘중앙을 만든 변방’이라는 의미도 더 적극적으로 부여하면 어떨까. 저항과 민주화에만 머물 이유도 없다. 완도에서 동아시아 해상무역을 주도한 장보고, 류큐와 필리핀·마카오를 경험하고 낯선 세계를 전한 조선인 문순득, 근대 교육과 산업을 이끈 김성수 등도 있다. 가고시마가 세키가하라의 패배와 사이고 다카모리의 비극을 넘어 모두의 서사를 만들었듯, 호남도 동학과 5·18을 넘어 더 넓은 이야기로 기억될 필요가 있다.





유성운([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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