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연일 ‘AI 속도전’을 강조하고 있다. 김 실장은 지난 11일 밤 페이스북에 “AI(인공지능) 혁명으로 메모리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대한민국 메모리 산업에 큰 기회지만, 국내 메모리 기업들이 그 수요를 충분히 뒷받침할 생산능력을 적시에 확보하지 못한다면 수요 증가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경쟁자를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썼다. 그러면서 “기술 우위는 적시에 확보된 생산능력을 통해 시장 우위로 연결될 때 비로소 지속된다”며 “이런 점에서 팹 증설은 단순한 성장 투자가 아니라 기술 우위를 시장 점유율로 연결하고, 후발주자가 고객과 물량을 확보하는 것을 막으며, 기술 추격의 기반이 형성되는 것을 예방하는 전략적 투자”라고 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주말 사이 한국 경제 회복을 이끌고 있는 반도체 호황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담은 글을 연이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사진은 지난 4월 27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하는 김 실장의 모습. 연합뉴스
김 실장은 “주요국들은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첨단 반도체 생산기반을 넓히고 있고, 그 경쟁의 핵심은 스케일(규모)과 속도”라며 800조원 규모의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을 포함한 이재명 정부의 3대(반도체·AI데이터센터·피지털AI) 메가 프로젝트의 속도전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것은 시간이다. 그 시간은 규제 완화나 제도 개선을 선언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전력과 용수, 송전망과 인허가라는 현실의 병목을 실제로 걷어낼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고 덧붙였다. 여권 핵심 인사는 “김 실장은 반도체 호황이 일회성 사이클이 아니라 거대한 산업 구조 변화에 따라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이란 인식이 강하다”고 전했다.
최근 한국 경제의 반도체 과의존에 대한 우려,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특징 지역(호남)에 대한 혜택을 위해 대기업의 팔을 비튼다는 취지의 비판이 동시다발로 제기되자 김 실장은 연일 페이스북에 반박글을 올리고 있다. 일부 해외 투자은행(IB)이 AI 반도체 랠리가 정점을 찍었다는 이유로 향후 AI 반도체 주가 전망을 어둡게 진단한 데 대한 대응 성격도 있다. 김 실장은 12일에도 페이스북에 “구조적 문제가 남아 있다는 사실과 성장 경로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든지 동시에 성립한다. 경제사는 모든 문제가 해결된 뒤에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며 “지금 나타나는 변화를 단순한 경기 회복이 아니라 장기 추세 자체가 달라질 가능성을 보여주는 초기 국면을 읽어야 하는 이유”라고 적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헬기를 타고 서남권 산업단지 후보지를 시찰하면서 동승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과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김 실장은 최근 반도체 호황에 따른 명목 국내총생산(GDP) 상승세에도 K자형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단 우려에 대해 에둘러 해명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5일 페이스북에 “복지는 생산의 반대편에 있는 제도가 아니다. 생산 혁명이 만들어낸 초과이윤을 다음 세대의 생산능력과 사회적 신뢰로 연결하는 투자”라며 “생산은 분배의 전제이고, 좋은 분배는 다시 더 큰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고 했다. 12일에도 “산업의 초(超)격차가 곧 국민 전체의 풍요를 뜻하지는 않는다”며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확대 ▶자사주 제도 개편 ▶국민성장펀드 등 정부의 자본시장 개편 과정을 “생산의 성과를 국민경제 전체로 퍼뜨리려는 성장 메커니즘의 일부”라고 표현했다.
국민의힘은 최근 AI와 반도체 투자 드라이브의 선두에 선 김 실장을 집중적으로 정조준하고 있다. 특히 한국 증시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급등락에 따라 출렁이는 데 대한 책임론을 그에게 제기하며 연일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최보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12일 해당 상품 출시 배경에는 김 실장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시장을 도박판으로 만들고 국민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한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라며 “김 실장은 지금 당장 국민 앞에 직접 사죄하고, 이 대통령은 섣부른 정책이 불러온 참혹한 실패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물어 김 실장을 즉각 경질하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