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현지시간) 린지 그레이엄(71·사우스캐롤라이나) 공화당 상원의원이 별세했다. 사진은 그레이엄 의원이 2015년 10월 27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지난 11일(현지시간) 별세한 린지 그레이엄(71·사우스캐롤라이나) 공화당 상원의원의 공백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정치적 큰 타격이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의회 내 핵심 우군으로 꼽혔던 그레이엄 의원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부담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CNN 인터뷰에서 그레이엄 의원의 별세를 두고 “끔찍한 상실”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몇 시간 전에도 통화했다”며 “그는 ‘장거리 비행이라 피곤하다’고 말했지만 그 외에는 괜찮았다”고 말했다. 그레이엄 의원은 별세 전날인 10일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그레이엄 의원은 민주당, 공화당 양쪽 모두와 잘 협력할 수 있었다”며 “민주당과 문제가 생기면 그가 해결할 수 있었다. 그건 대다수 공화당원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2007년 7월 24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공군기지에서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그레이엄 의원이 군인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1994년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한 그레이엄 의원은 이후 20여 년간 공화당의 대표적인 외교·안보 강경파로 활동해왔다. 2016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펼쳐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트럼프와 경쟁자로 맞섰지만, 트럼프 집권 이후에는 그의 핵심 우군으로 자리매김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적극 옹호했으며 최근 이란과의 군사 충돌 국면에서도 트럼프의 결정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트럼프 대통령 2기 국정 과제를 추진하는 데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민주당이 강력히 반발한 감세 및 사회복지 프로그램 개편안인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유권자 등록 요건을 강화하는 ‘세이브 아메리카 법안’ 등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한 주요 입법 과제의 의회 통과를 지원하며 사실상 백악관과 의회를 잇는 핵심 가교 역할을 해왔다.
정치권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 내 최대 우군을 잃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화당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공세와 당내 노선 갈등에 직면한 상황에서 그레이엄 의원의 부재는 적지 않은 타격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5선에 도전할 예정이었던 그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공화당은 후임 후보 선정이라는 새로운 과제까지 떠안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임 문제와 관련해 “훌륭한 인물이 한 명 있다”라면서도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 린지가 숨진 지 얼마 안 돼서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다만 공화당 내에서는 해당 인물이 누구든, 그레이엄 의원의 정치적 영향력과 전국적 인지도를 단기간에 대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헨리 맥매스터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는 이날 “그레이엄 의원은 대체 불가능한 인물”이라며 “그와 같은 사람을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2023년 1월 28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컬럼비아에서 열린 캠페인 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그레이엄 의원의 연설을 듣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그레이엄 의원의 별세는 미국 정치권 고령화 문제에도 다시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12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현재 상원의원 평균 연령은 약 66세다. 그레이엄 의원과 동갑이거나 그보다 나이가 많은 의원은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다. 상·하원을 합친 전체 연방의회 의원 가운데 약 4분의 1은 70세 이상이다.
이에 따라 의원들이 지나치게 고령화돼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의원들이 70~80대에도 장기간 현역 생활을 이어가면서 젊은 세대가 직면한 경제·사회적 현실과 점차 괴리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몇 년 사이 미치 매코널(84·켄터키) 공화당 상원의원과 같은 고령 의원들의 건강 문제와 업무 수행 능력을 둘러싼 논란이 반복적으로 불거진 것도 이런 비판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편 국제정치 측면에서는 우크라이나가 미 의회 내 핵심 지지자를 잃게 됐다. 그레이엄 의원은 러시아에 대한 강경 대응과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확대를 꾸준히 주장해 온 대표적 인사였다. 젤렌스키 대통령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미국 의회에서 초당적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CNN은 “미국 내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을 이끌던 상징적인 인물이 사라지면서 미국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외교력이 약화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그레이엄 의원의 별세가 우크라이나에는 정치적 타격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