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볼티모어에 사는 32세 프로젝트 매니저 켄들 맥길은 출근이 두려워졌다. 직속 상사와의 관계는 갈수록 악화됐고, 어느새 두 사람 몫의 업무를 혼자 떠맡게 됐다. 상사와 면담이 있는 날이면 창가에 서서 심호흡을 해야 겨우 불안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지난해 봄, 맥길은 정신건강 휴직에 들어갔다. 그는 “휴직을 마치고 나니 원래의 나로 돌아온 느낌이었다”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같은 회사에서 1년 정도 더 근무한 뒤 새로운 직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경진 기자
13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최근 미국에선 우울증과 불안장애 때문에 휴직을 신청하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업무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번아웃 증후군’을 호소하는 직장인도 많다. 노동법 전문 로펌 리틀러 멘델슨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67%는 지난 1년 동안 정신건강과 관련한 휴직이나 근무 조정 요청이 증가했다고 답했다. 대기업으로 범위를 넓히면 이 비율은 74%까지 올라간다. 노동 전문 변호사 제프 노왁은 “코로나19 이후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기업들의 부담을 키운다. 기업 정신건강 서비스 업체 스프링헬스가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 6곳 가운데 1곳은 정신건강 휴직자가 1년 새 25% 이상 증가했다고 답했다. 회사들은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임시 직원을 채용하거나 남은 직원들에게 업무를 나눠 맡기고 있다. 출산휴가처럼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경우와 달리, 정신건강 휴직은 갑작스럽게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 기업 입장에서는 더 부담스럽다. 정신건강 휴직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이에 기업들은 직원들의 정신건강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운영의 문제로 보기 시작했다. 미국 대형 연예기획사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 에이전시(CAA) 는 최근 장기 정신건강 휴직이 늘어나자 명상 앱 캄 과 애도 지원 서비스 엠패시를 새로운 복지 프로그램에 추가했다. 독일 보험사 알리안츠 호주법인은 번아웃을 줄이기 위해 매달 ‘케어 데이’와 분기별 정신건강 휴가를 도입했다. 회의 없는 날을 운영하고 회의 사이에 여유 시간을 두는 등 업무 방식 자체를 바꾸는 실험도 진행 중이다. 영국 에너지기업 센트리카는 물리치료와 정신건강 상담을 조기에 제공하는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한 결과 결근률을 낮추는 효과를 봤다.
블룸버그는 ”팬데믹 당시에는 인재 확보를 위한 복지 경쟁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생산성과 인재 유지를 위한 예방 투자로 성격이 변화했다“며 “기업용 정신건강 서비스와 HR테크 시장도 새로운 성장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기업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삼성전자의 ’라이프코칭센터’, 현대차의 ‘공감’, SK하이닉스의 ‘마음산책’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도 ‘선제적 예방’에 신경쓰고 있다. 한 대기업 인사관리 담당 인원은 “불안장애나 번아웃을 호소하며 휴직을 택하는 20ㆍ30이 많다”며 “이젠 직원들의 마음관리를 복지가 아닌 ‘생산성 투자’로 인식하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하선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