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에서 필기시험이 확산하고 있다. 필기시험을 치르는 노스이스턴대 학생들. [사진 노스이스턴대]
인공지능(AI)이 캠퍼스 시험 풍경을 레트로(retro·복고)로 바꾸고 있다.
미국 대학가에서 필기시험·면접 평가 방식이 확산하고 있다.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평가가 활발한 가운데 색다른 풍경이다. 챗GPT·제미나이가 과제는 물론 에세이와 발표문까지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시대에 접어들자 역설적으로 진짜 학생의 실력을 평가하려는 대학 측의 노력이다. AP통신은 “학생이 실제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결과물보다 ‘사고 과정’을 검증하려는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고 짚었다.
AP에 따르면 크리스 셰퍼 코넬대 생체의공학과 교수는 학생들에게 과제를 제출한 뒤 20분 동안 ‘구술 방어’를 요구한다. 학생은 교수와 일대일로 마주 앉아 자신이 제출한 과제의 풀이 과정을 설명해야 한다. 셰퍼 교수는 “구술시험은 AI로 얼버무릴 수 없다”고 말했다.
에밀리 헤머 펜실베이니아대 중동언어문화학과 교수도 서면 보고서와 구술시험을 병행한다. 구술 평가를 도입한 교수진의 문제의식은 비슷하다. 학생들이 집에서 제출하는 에세이와 과제는 점점 더 완벽한 모습이지만 막상 내용을 설명해보라고 하면 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캐서린 하트만 와이오밍대 종교학과 교수도 학생들과 30분 동안 마주 앉아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구술 평가를 도입했다. 평가에 참여한 학생은 “구술 평가에서는 AI를 어떻게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두려웠지만, 지금은 더 많은 수업에서 이런 시험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하트만 교수는 “교실은 체육관이고, 나는 학생의 트레이너다. 학생들이 직접 덤벨을 들기 원한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필기(손글씨)시험의 부활을 보도했다. ‘AI가 미국 교실의 기술 반동을 가속하고 있다’란 제목의 기사에서 ‘블루북’ 시험지 판매량이 2022~2024년 두 배 이상 늘어난 점에 주목했다. 블루북은 대학 시험장에서 쓰는 손글씨 답안지다.
교육 연구기관 인텔리전트의 2023년 설문 조사에 따르면 고교·대학 교사의 66%가 “챗GPT 때문에 과제를 바꾸고 있다”고 답했다. 그중 76%가 “손글씨 과제를 요구하거나,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87%는 “구술시험을 추가했거나 추가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로라 로마스 럿거스대 문학과 교수는 AI로 만들기 쉬운 파워포인트 대신 구두로 발표를 고집한다. 시험 중에는 휴대전화를 보지 못 하도록 화장실 출입도 제한한다.
AI 시대 대학가 시험 변화의 핵심은 단순한 ‘AI 금지’가 아니다. 오히려 AI를 전제로 한 새로운 검증 시스템에 가깝다. 파노스 이페이로티스 뉴욕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오히려 AI를 활용한 구술시험을 도입했다. 학생들이 온라인에 접속해 AI와 대화하며 시험을 치른다. AI가 학생 답변에 따라 추가 질문을 던지고, 프로젝트 내용을 실제로 이해했는지 검증한다.
이페이로티스 교수는 AP에 “불에는 불로 맞서야 한다”며 “학생이 팀 프로젝트를 정말 이해했는지, 무임승차했는지, 모든 걸 AI에 외주한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AI를 활용한 부정행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도입하는 추세다. 부정행위에 대한 처벌 뿐 아니라 달라진 환경에 맞춰 평가 체제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정행위를 잡겠다고 “AI를 쓰지 마라”는 규제 일변도로 접근해선 안 된다는 취지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