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에 사는 직장인 오모(35)씨는 최근 PC 견적을 뽑아본 뒤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고장 난 부분만 부품을 사서 쓰려고 해도 부품값 자체가 워낙 뛰어 의미가 없었다”며 “앞으로 500만원까지 오를 수도 있다는 말에 지금이 가장 쌀 때라며 아내를 설득하고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서비스 엔지니어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를 점검하는 모습. 사진 삼성전자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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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플레이션’에 수리비도 올랐다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붐이 촉발한 이른바 ‘칩플레이션(반도체+인플레이션)’이 스마트폰과 PC 등 IT(정보기술) 완제품 가격을 밀어 올린 데 이어, 수리비와 애프터서비스 비용까지 올리며 소비자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
13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달 초 삼성전자서비스에 공급하는 수리용 자재 가격을 올렸다. 지난 1월 인상 이후 6개월 만의 추가 인상이다. 출장비와 공임료는 동결했는데 핵심 자재비가 크게 오른 탓이다. 제품별 평균 인상 폭은 휴대전화 1만1000원, 에어컨 8000원, 냉장고 3000원 수준이다. 전업주부 최모(여·33)씨는 “성과급 잔치에 주식 대박으로 주변 물가와 집값이 들썩인다는데, 정작 우리 집은 주식 고점에 물려 손실만 보고 있다”며 “살림살이는 팍팍한데 별의별 가격이 다 오르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신제품 가격도 오름세다. 삼성전자가 오는 2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공개하는 차세대 폴더블 스마트폰 ‘갤럭시 Z 폴드8’은 사상 처음으로 300만원대 출고가가 예상된다. 실제로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 6월 컴퓨터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22.2% 올랐고, 저장장치 가격은 45.6% 급등했다. 직장인 이모(39)씨는 “어머니 스마트폰이 고장 나 새 제품을 사드리려 했지만 너무 비싸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결국 내가 쓰던 휴대전화에 유심만 옮겨 꽂아 드렸다”고 말했다.
1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이날 코스피는 장중 8% 넘게 급락해 2개월여 만에 7000선을 내줬다.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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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엔 ‘반도체 공급 절벽’ 예고
업계 전문가들은 글로벌 빅테크(대형 기술기업)들의 AI 데이터센터 구축 경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칩플레이션 현상이 내년에 정점을 찍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일반 소비자가 실제로 체감하게 될 2027년 메모리 공급 부족은 단순한 품귀를 넘어 ‘공급 절벽’ 수준으로 심화할 것”이라며 “이는 반도체 70년 역사상 가장 타이트한(부족한) 공급 국면이 될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배경에는 빅테크의 장기공급계약(LTA)이 있다. 범용 메모리의 신규 생산 능력이 사실상 늘어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AI 투자에 나선 빅테크들이 장기 계약을 확대하면서 신규 생산 물량이 계약 고객사 중심으로 우선 배정되고 있어서다. 결국 일반 PC와 가전제품에 공급되는 범용 메모리 물량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현재 계약은 대부분 ‘취소·반품 불가(NCNR)’ 조건을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AI용 메모리 공급이 우선시되면 범용 메모리 공급 부족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 역시 ‘반도체 고점론(피크아웃)’의 우려보다 공급 부족이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한은은 “AI 투자 경쟁으로 반도체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첨단 메모리는 기술적 난도가 높아 생산량을 단기간에 늘리기 어렵다”며 “과거와 달리 수요 증가 속도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