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 유보·중단 결정을 환자가 직접 하면 가족이 대신 할 때보다 치료 강도·의료비가 모두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환자가 충분한 논의를 거쳐 연명의료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는 게 중요하단 걸 보여준다.
오탁규·송인애 분당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팀은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를 활용해 2020~2023년 중환자실에 입원한 전국 성인 환자 118만9042명을 분석한 내용을 14일 공개했다. 연구팀은 연명의료 유보·중단을 결정하는 주체가 의료 이용 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했다.
연명의료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치료 효과 없이 생명 연장만을 목적으로 실시하는 의료 행위로, 심폐소생술 등이 해당한다. 환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로 연명의료에 대한 의사를 직접 밝힐 수 있다. 다만 계획서는 환자가 말기·임종기 진단을 받은 뒤 작성할 수 있어 이미 의사결정 능력을 상실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가족이 환자의 의사를 추정해 대신 작성하곤 한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가족이 연명의료 유보·중단 결정을 내린 비율은 55.7% 수준이다.
연구팀은 연명의료 관련 문서가 없는 환자 그룹을 기준으로 환자 본인이 계획서를 작성한 그룹, 가족이 대신 계획서를 작성한 그룹을 각각 비교했다. 분석 결과, 환자 작성군은 문서가 없는 환자군보다 인공호흡기 삽관·체외생명유지술 등 고강도의 침습적 연명의료를 시행할 가능성이 0.7배로 낮았다. 특히 중환자실 입원 후 90일 이내 사망한 환자만 살펴보면 그 가능성이 0.43배로 더 내려갔다. 반면 가족 작성군은 문서가 없는 환자군 대비 2.35배 높았다.
의료비에서도 차이가 뚜렷했다. 환자 작성군의 일일 의료비는 문서가 없는 환자군보다 14% 낮았지만, 가족 작성군은 오히려 4% 높게 나왔다. 연구팀은 “환자 가족이 심리적 부담, 불확실성 속에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현실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를 진행한 분당서울대병원 오탁규(왼쪽), 송인애(오른쪽) 교수. 사진 분당서울대병원
이번 분석은 연명의료 유보·중단 결정 여부에 초점을 맞춘 기존 연구와 달리 의사결정 주체가 연명의료 이용 양상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걸 대규모 데이터로 제시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연구 결과는 호흡기·중환자의학 분야 국제학술지인 ‘미국 호흡기·중환자 의학 저널(American Journal of Respiratory and Critical Care Medicine)’에 실렸다.
오탁규 교수는 “연명의료 유보·중단 결정은 되도록 환자 본인이 자신의 가치와 선호를 표현할 수 있는 시기에 충분한 논의를 거쳐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문화를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