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행 때문에 (책을) 읽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오래 남는 건 취향이니까요. "
시인 차정은(20)에게 독서를 매력적인 문화로 여기는 ‘텍스트 힙’은 반가운 현상이다. 그의 시집 『토마토 컵라면』(2023)과 『여름 피치 스파클링』(2025)은 시 부문 베스트셀러에 각각 6주 이상(예스24 기준) 올랐고, 총 7만 부가 판매됐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 자연스레 글이 들어온 지금이 재밌다”고 말했다.
여섯 번째 시집 『에어컨 사라다』(자음과모음) 출간에 맞춰 이달 초 전화 인터뷰로 만난 그는 “내 이야기를 글로 쓰고 나니 시의 형식이었다”며 “시 쓰기는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다른 시인의 말투가 옮을까 봐 시집 읽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저만의 규칙이 있다면 종이로 뽑아서 퇴고하고, 사용하는 단어를 고심하여 고르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시가 독자와 나에게 다정한지 살펴봅니다.”
그에겐 ‘등단’ 경력이 없다. 신춘문예·문예지·공모전 수상을 목표로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전히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기록하기 위해 썼다.
그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건 ‘자가 출판’한 시집들 덕분이다. 열일곱 살이 되던 2023년, 자가 출판 플랫폼 부크크를 통해 세 권의 시집 『꽃이 피는 시간』『토마토 컵라면』『여름에는 상처가 제철』을 냈다. 소장 목적이었다. 이 시집들을 독자가 찾아내 좋아해줬다. 독자 대부분은 1020세대다.
이후 『브로콜리 알러지』(2024, 부크크), 『여름 피치 스파클링』(2025, 다이브)까지 발표했다.
차정은 시집 『에어컨 사라다』 표지. [사진 자음과모음]
그는 “자가 출판 이후 책을 내려는 생각이 아예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독자와 출판사로부터 출간 문의가 이어졌습니다. 아직도 ‘작가’ ‘시인’이라는 호칭이 낯설지만, 내 시를 읽어주는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계속 쓰려고 해요. 이 책도 그렇게 쓰다보니 나왔어요.”
차정은은 한창 체감 중인 ‘청춘’을 주제로 시를 쓴다. 10대에 쓴 시집에는 “사랑과 긍정을 무조건 예찬하는” 청춘의 단상이 담겼다.
‘사랑의 속삭임을 너는 들었니/불그스름한 향을 떼어 옷에 칠하고/(…)/새빨간 하트를 똑 따서 책 사이에 고이 말려/네게 전했던 사랑은/앞으로도 길이길이 남을거야’ (『토마토 컵라면』 ‘붉은 네잎클로버’ 중)
20대가 되어 쓴 『에어컨 사라다』에서 차정은이 바라본 청춘의 모습은 다르다. “쓴맛을 본 청춘일까요. 이전보다 성장한 얼굴을 담았습니다. 막 열아홉 살이 되었을 때만 해도 사랑과 긍정은 무조건 옳은 거라 고집했거든요. 하지만 세상엔 다양한 모양의 사랑이 가득하고, 그들의 방식은 틀린 게 아니란 걸 인정하게 됐어요.”
‘사랑을 할 때 믿음을 가지는 것처럼/우리는 딸기를 믿어보는 거예요/발밑에서 알랑거리는 것들을/시원하게 한잔합시다//믿어보실래요?’ (『에어컨 사라다』, ‘스트로베리 스무디’ 중)
차정은은 현재 디자인 전공인 대학생이다. 책을 낼 때도 자신이 디자인한 표지를 쓰곤 한다. 시를 처음 쓴 건 초등학생 때다. 2023년 낸 첫 시집 『꽃이 피는 시간』엔 중학생 때 쓴 시도 수록했다.
차정은 시인은 퇴고할 때 종이로 수정 작업을 거친다. 시를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단어라고 한다. [사진 차정은]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히 흐른다. ‘청춘’이 지나면 무엇이 차정은을 쓰게 할까. 차정은은 이 질문에 “정말 답하기 어렵다”며 뜸을 들였다.
“사랑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그마저도 유한하다면 상실이 저를 쓰게 만들 것 같아요. 살아간다는 건 이전의 나와도 계속 작별하는 일이니까요. 저는 앞으로도 상실을 오래 들여다보고 싶어요. 기쁨과 사랑뿐만 아닌 상실까지 품을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차정은 시인이 최근 한 디자인 작업. 자신이 쓴 시집을 디자인했다. [사진 차정은]
차정은 시인이 최근 한 디자인 작업. 자신이 쓴 시집을 디자인했다. [사진 차정은]
디자인 역시 차정은에게는 중요한 표현 수단 중 하나다. 그는 계속해서 두 장르를 오가며 활동할 예정이다.
“저는 연결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람과 사람, 언어와 이미지, 기억과 현재를요. 제게 창작은 새로운 걸 만들어낸다는 의미보다, 관계 없어 보이는 것들에 다리를 놓는 일로 느껴져요. 앞으로도 하나의 분야에 머무르기보다 경계를 넘나드는 창작을 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