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3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해협이 열려 숨통이 트이나 싶었는데, 다시 닫히면 원유 수급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로 국내 원유 수급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해협 통항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내 정유업계에 다시 긴장감이 돌고 있다. 정유사들은 지난 3월 이후 우회 항로와 원유 수입선 다변화로 대응해왔지만 미봉책에 불과해 봉쇄가 길어질 경우 수급과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업계에선 이 시기를 9월로 본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들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폐쇄 선언과 미국의 이란 해상 봉쇄 재개가 원유 수급에 미칠 영향을 점검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군이 14일 오후 4시(현지시간)부터 이란 선박과 이란을 거래 상대방으로 둔 선박의 통항을 막는 봉쇄를 재개한다고 밝혔다. 안전 보장 비용으로 해협을 통과하는 선적 화물 가치의 20%를 받겠다는 방침도 내놨지만, 구체적인 시행 가능성은 불분명하다.
13일(현지시간) 중앙일보가 확인한 서한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0일 미국 상원에 보낸 서한을 통해 이란에 대한 군사행동이 7일자로 시작됐다고 공식 통보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국제유가도 즉각 출렁였다. 이날 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9월 인도분 종가는 배럴당 83.30달러로, 전장 대비 9.6% 급등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8월 인도분 종가는 배럴당 78.14달러로, 전 거래일보다 9.4% 올랐다. 두 유가 모두 미국과 이란이 휴전 체제에 들어서며 각각 배럴당 71.57달러와 68.55달러까지 떨어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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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수급 이상 없지만…우회로는 ‘미봉책’
정유사들은 호르무즈해협 재봉쇄가 확정돼도 단기적인 원유 수급에는 큰 차질이 없다는 입장이다. 원유를 통상 2~3개월 전에 계약하는 만큼 해당 기간 도입 물량이 이미 대부분 확정됐기 때문이다. 지난 5~6월 우회항로와 비중동산 원유로 계약한 물량, 해협 안에 갇혔다가 빠져나온 유조선 물량 등이 단기 수급을 떠받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는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경우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 통항이 다시 사실상 중단되고 각국의 대체 원유 확보 경쟁까지 치열해지면 원유 수급 불안과 유가 변동성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이란 해상 봉쇄를 재개한다고 밝히면서 13일(현지시간) 국제 유가가 10% 가까이 급등했다. 사진은 14일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 연합뉴스
정유사들은 그동안 사우디아라비아 얀부항과 오만 인근 등 호르무즈를 거치지 않는 항만을 이용하고, 미국·중앙아시아 등 비중동산 원유 수입을 확대했다. 지난해 국내 원유 수입의 중동산 비중은 69.1%였고, 이 가운데 약 95%가 호르무즈해협을 거쳤다. 봉쇄 이후인 5월에는 중동산 비중이 50% 안팎까지 낮아졌다.
하지만 얀부항 등으로 옮길 수 있는 원유는 호르무즈를 통해 거래되는 물량의 절반 수준에 불과해 근본책이 되기 어렵다는 평가다.
미국산 원유 등 대체 원유는 중동산(20~21일)보다 운송 기간이 두 배 이상 길고 운임·보험료 부담도 크다. 국내 정유설비가 중동산 중질유 처리에 최적화돼 있어 미국산 경질유 등을 사용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런 애로 탓에 정부는 국가 비축유를 정유사에 빌려주고 대체 원유 도착 뒤 같은 물량으로 돌려받는 ‘스왑’ 제도를 시행해왔다. 하지만 해협 통항이 일부 재개된 뒤 정부는 신규 스왑을 중단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편 호르무즈해협 안쪽에는 한국 선박 2척과 한국인 선원 17명이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미국·이란 전쟁 당시 미사일 공격을 받은 나무호는 지난 12일 두바이 수리조선소에서 수리를 마치고 현재 호르무즈해협 내 정박 중이다. HMM 관계자는 “이후 정박 중인 선박이 공격받은 사례는 없으며 나무호도 안전한 곳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