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2004년 대선 자금 수사를 벌였던 송광수 검찰총장(오른쪽)과 안대희 중수부장. 중앙포토
「
15화. 거악에 맞서 치지 못하면 죽는다
」
" 다른 4대 그룹도 다 돈을 냈으니 SK도 내시라. "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 재정위원장 최돈웅 의원은 ‘선거 자금 명목으로 100억원을 내라’고 압력을 가했고, SK그룹은 굴복했다.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은 SK가 돈을 상납한 수사 내용을 복기하며 상식적인 의문을 자신에게 던졌다.
" 설마 이회창 후보의 한나라당이 SK한테만 돈을 받았겠어? "
" 노무현 후보의 민주당은 가만있었을까? "
2002년 16대 대선 정국은 긴박했다. 그해 12·19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의 ‘이회창 대세론’이 한동안 강세였다. 그러나 투표일이 가까워질수록 민주당의 ‘노풍(盧風, 노무현 돌풍)’이 거세지면서 뒤집혔다. 투표 결과 노무현 48.9%, 이회창 46.6%를 기록했다.
기업으로서는 이회창 대세론에 크게 ‘베팅’하고, 노풍에도 적당히 ‘보험’을 들어놓는 게 안전했다. 누가 당선되든 보복을 피하려면 양다리 걸치기가 지혜로운 선택이었다.
2003년 8월 드러난 SK 비자금 수사 결과는 당시 정치권과 기업의 고질적인 정경유착 행태를 그대로 드러다. SK의 검은돈 중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에게 100억원이 갔고, 민주당 이상수 의원에게는 4분의 1인 25억원이 갔다. 노무현 대통령 측근인 최도술 청와대 총무비서관에게는 대선 후 ‘당선 축하금’으로 11억원을 몰래 건넸다.
여야와 대통령 측근에게 골고루 배분한 것이다. 당시 손길승 SK그룹 회장은 언론에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표적 사정할 수 있다는 식으로 나오는 바람에 (100억원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시작된 중수부의 대선 자금 수사는 정치인 40명과 기업인 20명을 범법자로 전락시켰다.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노무현은 최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아픔을 겪었다. 검찰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작품으로 꼽히며 ‘검찰 전성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검찰 징비록’ 취재팀은 반전을 거듭한 수사의 실체를 추적하면서 지금껏 숨겨진 비화를 단독으로 입수, 처음으로 공개한다.
2003~2004년 대검 중수부의 대선 자금 수사를 무협지 형식으로 패러디한 라이브이즈닷컴의 ‘대선 자객’ 연재 웹툰 중 한 컷. 안대희 중수부장을 ‘딴나라당 장수’들과 싸우는 장군으로 묘사했다. 인터넷 캡처
2004년 5월 대선 자금 수사가 끝날 무렵의 일이다. 노 대통령의 처리 문제가 불거졌다. “노 대통령이 퇴임 후 대선 자금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논란이 일었다.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을 ‘불입건’했다. 안희정 등 핵심 측근들과 대선 캠프 인사들이 저지른 불법 대선 자금 조성에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관여하거나 공모한 명백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의미다. 하지만 새로운 증거나 단서가 발견되면 다시 입건해 수사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당시의 상황을 잘 아는 대검 지휘부 출신 인사 K는 취재팀에 그 전말을 설명했다.
그즈음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고위 관계자가 중수부 수사 관계자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 ‘수사 결과, 노 대통령이 불법 대선 자금과 관련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깔끔히 마무리해 달라. "
청와대 인사는 혹시 모를 훗날 재수사 요구 등 후환이 생기지 않도록 공식적으로 털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중수부는 난감했다.
받아 주면 ‘권력의 시녀’로 떨어지고, 거부하면 ‘대통령의 격노’가 예상됐다.
청와대와 대검 중수부가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자금 수사 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빚었던 배경과 사연을 처음으로 공개한다.
· “노무현 관련 수사 기록 보존하라”
· “간땡이가 분 검찰”…중수부 폐지론의 시작
· 차떼기는 어떻게 적발됐나
· 대통령직 건 노무현의 도박, 왜?
· 거악 수사는 전쟁…치지 못하면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