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로부터 우회 수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한국의 중견기업 베이스그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가족기업에 200만 달러(약 30억 원)의 거액을 지급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를 두고 미·중 무역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 기업이 트럼프 일가와의 사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로비를 시도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NYT가 입수해 보도한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재산 신고 자료에 따르면, 베이스그룹은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지주회사인 ‘트럼프 오거니제이션(Trump Organization)’에 200만 달러를 지급했다. 베이스그룹 측은 이 자금의 성격을 신규 사업 추진을 위한 ‘의향서(LOI)’ 체결 및 ‘환불 불가 개발 수수료’의 일부라고 신고했다.
베이스그룹은 지난 10년 가까이 트럼프 일가와 긴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공을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집 베이스그룹 회장은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워싱턴 DC를 직접 방문했으며, 봄에는 플로리다주 소재 트럼프 내셔널 도럴 골프클럽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차남이자 트럼프 오거니제이션 총괄부사장인 에릭 트럼프를 만났다. 올해 2월에는 에릭 트럼프를 서울 본사로 공식 초청해 국내 정·재계 인사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이러한 밀착 관계는 비즈니스로도 이어졌다. 베이스그룹의 유통 계열사인 금양인터내셔널은 미국 버지니아주에 위치한 ‘트럼프 와이너리’의 와인을 국내로 독점 수입해 판매하고 있으며, 건설 계열사인 까뮤이앤씨 역시 트럼프 측과 국내 호텔 및 엔터테인먼트 복합시설 건설을 골자로 한 골프장 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다.
문제는 대가성 의혹이다. 베이스그룹이 트럼프 측에 거액을 건넨 시기가 계열사인 ‘한국 알루미늄’이 미국 정부로부터 고강도 무역 조사를 받던 민감한 시점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까뮤이앤씨의 자회사인 한국알루미늄은 식품 및 약품 포장재용 알루미늄 포일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이 회사는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022년부터 중국산 알루미늄 원자재를 가공해 미국으로 수출함으로써 미국의 대중국 관세를 우회 회피했다는 혐의를 받아왔다. 현재 미 상무부가 이 건에 대해 예비 조사를 마치고 최종 조사 결과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알루미늄을 비롯한 국내 업계는 이 조치에 강력히 반발하며 소명을 진행해 왔다.
이 때문에 미국 정가와 언론에서는 한국알루미늄이 직면한 무역 규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기업인 베이스그룹이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가족인 에릭 트럼프와 트럼프 오거니제이션을 창구로 삼아 우회적인 로비 자금을 투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의혹이 확산하자 양측은 일제히 진화에 나섰다. 베이스그룹은 공식 성명을 통해 “트럼프 오거니제이션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골프장과 리조트를 운영하는 파트너”라며 “이번에 전달된 200만 달러는 아직 공식 발표되지 않은 신규 골프장 인수 및 개발 프로젝트를 위한 정당한 사업적 투자금일 뿐, 계열사의 알루미늄 수출 조사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트럼프 오거니제이션의 앨런 가튼 최고법률책임자(CLO) 역시 성명을 내고 “이번 거래가 정상적인 비즈니스 외에 다른 목적이나 고려로 이루어졌다는 주장과 의혹은 완전히 날조된 허구에 불과하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현직 미국 대통령의 가족기업이 외국 정부와 무역 갈등을 빚고 있는 해외 사기업으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직접 수령했다는 점에서, 향후 상무부의 최종 결정에 따라 공정성 시비와 트럼프 행정부의 사적 이해충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