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노동자가 동원돼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당시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알리겠다고 한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국제기구의 판단이 나왔다. 유네스코 산하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에 한국 등 관련국과 협의해 관련 전시를 보완하고, 이행 상황을 다시 보고하라고 권고했다.
유네스코 산하 세계유산위가 15일 공개한 사도광산 보존 현황 결정문 초안은 일본이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마련한 현재의 해석·전시 전략이 광산이 운영된 모든 시기의 ‘전체 역사(whole history)’를 현장에서 어떻게 보여주는지 “추가적인 명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체 역사에 관한 해석·전시 전략이 일부 진전을 보였지만, 아직 완전히 개발되지 않았다”며 일본이 “관련 당사국들과 긴밀히 협의”해 전시 전략과 시설을 개선하도록 권고했다. 진행 상황도 세계유산센터에 정기적으로 알리도록 했다. 사도광산에서 조선인 노동자 등이 당한 강제노역 실태 등을 전시에 반영하고, 이를 위해 사실상 한국과 협의하라는 취지다.
사도광산은 태평양전쟁 당시 조선인 1500~2000여명이 동원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 곳이다. 한국 정부는 2024년 7월 일본이 이런 역사를 포함한 광산의 전체 역사를 충실히 알리고, 희생자를 기리는 추도식을 매년 열겠다고 약속하자 세계유산 등재에 동의했다. 하지만 이후 마련된 전시와 보고서에는 강제동원을 직접 드러내는 표현이 빠졌다. 한국 정부는 일본 측 추도사에도 강제동원 인정과 사과의 뜻이 충분히 담기지 않았다고 보고 2024년과 2025년 추도식에 모두 불참했다.
일본은 지난해 12월 제출한 보존현황보고서(SOC)를 통해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의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 등 후속 조치를 설명했다. 이후 올해 상반기엔 옛 한국인 노동자 숙소와 공동취사장 등 관련 유적으로 향하는 이정표와 안내문 10여개를 추가했다. 그러나 관련 전시와 안내엔 ‘한반도 출신 노동자’란 표현만 있을 뿐 여전히 동원과 노역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표현은 없었다.
정부는 SOC 제출 이후 일본과 두 차례 국장급 대면 협의를 갖고, 유네스코 사무국과 위원국들에도 일본의 조치가 불충분하다는 입장을 설명했다.
앞서 일본은 군함도 등재 때도 조선인이 강제로 동원돼 가혹한 환경에서 노동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보여주는 전시물을 마련하기로 했지만, 제대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행 점검 때마다 수차례 유네스코가 전시 등을 보완하라고 권고했는데도 일본은 사실상 이를 무시했고, 유네스코는 2021년 세계유산위 결정문에 “강한 유감”을 표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비해 사도광산에 대해서는 이번 첫 점검에서 곧바로 일본에 전시를 추가로 개선하고 이행 결과를 다시 제출하라는 권고가 나온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첫 점검부터 재보고와 재검토가 결정된 것은 사도광산 문제를 계속 관리할 근거가 마련됐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세계유산위는 일본에 2027년 12월 1일까지 새 이행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보고서는 2028년 제50차 회의에서 다시 검토된다.
이날 공개된 초안은 초안은 22~24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제48차 세계유산위에서 논의되며, 별도 이견이 없으면 합의로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