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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스승, 조완규…운동권 학생들도 매년 찾아왔다

중앙일보

2026.07.15 08:08 2026.07.1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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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많은 조문객들이 조완규(사진) 전 서울대학교 총장님의 영결식을 갖고 조 총장님의 마지막 길을 눈물로 배웅하였다.

조완규 총장님은 98년간의 긴 여정을 통해 많은 활동을 하셨지만, 아마도 대표적으로는 기초과학자, 교육·과학 행정가, 그리고 학생을 사랑하는 참교육자 등 세 분야의 업적으로 오래 기억될 것으로 생각된다.

조 총장님은 발생생물학을 연구한 국내 1세대 기초생물학자로서, 한국 기초과학의 토대를 닦으셨다. 6·25 전쟁 후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연구의 끈을 놓지 않으셨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업적을 남기신 바 있다.

이러한 열정은 후에 ‘기초과학연구소 지원사업’을 통해 전국 대학에 기초과학 연구가 뿌리를 내리도록 하셨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연구비를 지원하면 연구비 사용도 투명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연구비 중앙관리제도를 도입하였다. 1997년에는 한국 최초의 국제기구인 국제백신연구소 (IVI)를 유치하여, 안전하고 저렴한 백신을 개발하고 빈곤국에 지원하는 연구소의 활동을 지원하는 상임 고문을 돌아가실 때까지 맡으셨다.

조 총장님은 또한 서울대학교 초대 자연과학대학장, 부총장, 총장 등의 보직을 거치면서 교육 행정가로서 많은 업적을 남기신 바 있다. 교수 공개채용 제도를 도입하여 과거 원로 교수의 영향력이 컸던 학과의 교수 채용을 투명하게 하였고, 이에 따라 젊고 유능한 교수들이 많이 채용되었다.

또한 학생의 정치활동 금지 조항을 삭제하고 학생징계권을 총장으로부터 단과대학 교수회의로 이관하는 등의‘자율 학칙’을 정부와의 투쟁을 통해 관철하여, 대학 민주화에 기여하기도 하셨다.

하지만 조 총장님의 인간적인 면모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학생을 위한 진정한 스승의 모습일 것이다. 조완규 교수님은 1966년부터 2년간 서울대 문리과대학의 학생과장을 맡으신 일이 있다.

당시 서울대 문리과대학은 독재 정부에 항거하는 학생 운동의 본거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서, 정부와 학생회 간의 마찰로 3개월 이상을 버틴 학생과장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조완규 선생님은 학생들을 이해하고 보호하는 역할에 충실해서 2년간 학생들의 신뢰를 받았고, 그 후 여러 분야의 거물이 된 당시의 운동권 학생들은 최근까지도 매년 조 총장님을 만나서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조완규 총장님처럼 여러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기신 분은 앞으로도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100세 가까운 연세에도 명철한 판단력으로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던 모습이 기억난다. 고인은 생전에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를 보는 것이 염원이라고 하셨는데, 그 염원을 풀어드리는 것이 후학들의 숙제일 것이다.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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