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취임 1주년 성과보고회. 각 부처 보고가 막힘없이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재명 대통령의 고개가 연신 갸웃하기 시작했다. 쓰읍, 하고 숨을 들이마시느라 말도 종종 끊겼다. 대통령의 표정도 달라졌다.
" 지금 수정하거나 방향을 틀 수 있어요? "
회의장 공기가 순간 달라졌다. 이어진 말은 더 직설적이었다.
" 내가 얘기하는데 부담이 없는데 이거는 글쎄요…. 이게 대통령이 다음 다음 다음 언제까지 쓸지도 모르는데, 지금 공모된 방향으로 가는 게 맞을지 참 걱정됩니다. "
이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제동을 건 대상은 대통령 세종집무실이었다. 강주엽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이 ‘세종 행정수도 완성’을 보고한 시간은 2분 남짓. 그러나 대통령은 잠깐 언급된 집무실 설계안만 콕 찍어 5분 넘게 질문했다.
취임 1주년 성과보고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강주엽 행복청장(오른쪽)에게 질의하고 있다. 사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유튜브 캡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대통령 세종집무실 설계공모는 지난 4월 끝났다. 심사위원들은 이미 당선작을 뽑았다. 하지만 두 달이 넘도록 행복청은 당선작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공모는 끝났는데 당선작만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동안 온갖 추측만 무성했을 뿐, 이 문제가 공개석상에서 거론된 적은 없었다. 두 달 넘게 이어진 침묵을 깬 사람은 대통령이었다.
세종집무실은 대한민국 역사상 다시 보기 어려운 프로젝트다. 청와대 본관이 완공된 1991년 이후 약 40년 만에 새로 짓는 대통령 집무공간이자 통일 이전에는 다시 없을 수도 있는 국가 최고 상징 건축물 프로젝트다.
지금의 청와대는 ‘불통의 건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대통령의 말년을 비참하게 만든 나쁜 건축물” “콘크리트로 목조 전통가옥을 흉내낸 가짜”라는 말도 듣는다. 새 집무실에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대정신이 담겨야 했다. 그러나 1주년 성과보고회에서 대통령은 사실상 당선작에 퇴짜를 놨다.
새 공모도 쉽지 않고, 기존 당선작을 밀어붙이기도 어려워졌다. 대통령 세종집무실 프로젝트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대통령의 한마디 이후 세종에서는 당선작 수정 논의가 시작됐고, 재공모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왜 대통령은 설계안을 멈춰세웠을까.
두 달째 공개되지 못한 당선작을 중앙일보가 단독 입수해 15일 더중앙플러스에서 먼저 공개했다.
두 달째 공개되지 못한 당선작은 해안건축 컨소시엄의 작품이었다. 건축업계에 따르면 심사위원들은 배치와 규모, 현실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끝에 이 작품을 최종 선정했다. 하지만 당선작을 높게 평가하는 목소리는 많지 않았다. 복수의 건축계 관계자는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 건축물로는 완성도가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서울 소재 대학의 한 건축학과 교수는 “건축설계 공모라기보다 마스터플랜 공모에 가까웠다”며 “건축 자체의 개념이나 공간이 인상적이라기보다 배치와 규모를 정리하는 수준이었다. 다섯 작품 가운데 가장 나았을 뿐 압도적인 수작(秀作)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사업 규모는 국내 공공건축 가운데 손꼽힌다. 공사비만 2057억원, 설계비는 111억원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향후 행정수도 이전 관련 법이 마련되면 증축 사업(3574억원)까지 이어지는 대한민국 최대급 국가 상징 건축 프로젝트다. 당초 발표일은 4월 27일이었다. 그러나 발표는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