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 해운기업 이전, 연매출 15조 전망 국내 최초 해사전문법원 출범 앞둬 행정·산업·사법 갖춘 해양수도 완성
컨테이너선과 하역 장비가 늘어선 부산 북항 야경.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과 HMM 등 해운기업 유치, 해사전문법원 설립이 이어지면서 부산은 행정·산업·사법 기능을 한데 모아 글로벌 해양수도로 도약하기 위한 핵심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사진 부산시]
“세계와 당당히 경쟁하는 해양수도 부산의 새 시대를 힘껏 열어젖히겠습니다.” 지난달 3일 전재수 부산시장이 당선이 확실시된 후 한 말이다. 그는 이날 “해수부 산하 공공기관 이전, 부산해사전문법원 설립, HMM을 비롯한 해운 대기업 유치 등으로 해양수도 부산을 완성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실상 자신의 재임기간 ‘해양수도 부산’ 완성을 가장 큰 목표로 제시한 것이다.
해양수도 부산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이후 역대 정부에서 ‘해양수도 특별법’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항만은 부산에 있었지만, 정책은 세종에서 만들어졌고, 국내 최대 해운기업은 서울에 본사를 뒀다. 해양 관련 공공기관도 전국에 흩어져 있었다. 세계적인 항만을 보유하고도 행정과 금융, 기업, 사법 기능이 분산된 탓에 부산은 ‘반쪽짜리 해양수도’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민선 9기를 맞이한 올해는 분위기가 다르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을 시작으로 HMM 본사 이전, 해사전문법원 설치, 해양수도 특별법 제정이 잇따르면서 그동안 선언 수준이었던 해양수도 구상이 제도와 조직, 산업을 갖춘 실체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부산은 국내 최대 항만도시지만 항만 규모가 곧 해양수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2023년 기준 부산항의 총부가가치는 17조3000억원으로 싱가포르항(55조8000억원)이나 네덜란드 로테르담항(26조3000억원)에 크게 못 미친다. 특히 부산항 부가가치의 절반 가량이 하역과 지원 서비스에 치중돼 있다. 반면 싱가포르항과 로테르담항은 금융과 법률, 물류, 해사 서비스 등 고부가가치 산업 비중이 훨씬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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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도 선언 20년 만에 법적 지위 확보
그러나 지난해 법적 기반이 마련되면서 변곡점을 맞이했다. ‘부산 해양수도 이전기관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2025년 11월 27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해양수도 부산’이라는 문구가 처음으로 법률에 명시됐다. 20년 가까이 선언에 머물렀던 해양수도가 처음으로 법적 지위를 확보한 셈이다. 이듬해 시행령까지 마련되면서 해양 관련 기관과 기업의 부산 이전을 지원할 제도적 기반도 갖췄다.
이후 가장 상징적인 변화로 해양수산부가 지난해 말 부산에 왔다. 정부 부처가 수도권이나 세종이 아닌 지역으로 이전한 첫 사례다. 해양정책을 수립하는 부처가 항만과 산업 현장 가까이 자리 잡으면서 정책과 산업 간 거리가 좁혀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전 시장은 “해수부 이전은 단순히 정부 부처 하나가 자리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해양정책의 중심축이 부산으로 이동하는 역사적 전환점”이라며 “이전 기관과 기업의 직원과 가족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부산시가 가진 모든 역량을 동원하겠다”고 말했다.
항만기업 이전도 이어지고 있다. SK해운과 에이치라인해운이 지난해 12월 부산 이전을 발표한 데 이어 올해 5월 HMM 본사가 부산 이전을 확정했다. 지난 7일에는 흥아해운도 부산행을 결정했다. 이들 4개 해운기업의 연 매출은 약 15조원으로 부산시 한 해 예산에 육박하는 규모다. 단순히 기업 주소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해운 산업의 의사결정 기능이 부산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사법 기능도 강화된다. 2028년 부산해사국제상사법원이 문을 열면 국내 최초의 해사전문법원이 출범한다. 그동안 상당수 해사 분쟁이 영국이나 싱가포르에서 해결되면서 연간 2000억~5000억원 규모의 법률 서비스 수요가 해외로 유출됐다. 앞으로는 법률 서비스를 비롯해 보험, 금융, 감정, 통·번역 등 연관 산업도 성장할 기반이 마련될 전망이다.
그러나 ‘해양수도 완성’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해양금융 기능 강화와 해수부 산하 공공기관의 추가 이전이 대표적이다. 해운과 조선, 항만 산업을 뒷받침할 금융 기능은 여전히 서울에 집중돼 있다. 부산시가 추진하는 동남권투자공사는 금융 공백을 메울 핵심 과제로 꼽힌다. 지역 산업에 장기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 플랫폼이 구축돼야 산업과 금융이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수도권과 세종시에 남아 있는 해양환경공단,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한국해양조사협회,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 등 공공기관의 부산 이전도 협의해 나가야 한다.
전재수 부산시장이 지난 7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부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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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해양전략인 ‘북극항로 개척’ 속도내
북극항로 개척도 해양수도 완성의 중요한 변수다. 러시아, 중국, 미국 등 강대국보다 후발 주자로 뛰어든 만큼 속도전이 요구된다. 전 시장은 “북극항로는 대한민국의 해양 전략을 바꾸고 부산을 미래 성장거점으로 도약시키는 새로운 길”이라며 “지산학(지자체·산업체·대학)과 노사정(노동자·사용자·정부)을 연계한 플랫폼을 구축해 북극항로 개발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여기에 가덕도 신공항과 부산신항, 유라시아 철도를 연결하는 트라이포트 전략이 현실화하면 부산은 해상과 항공, 철도를 아우르는 복합물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다. 전 시장은 “해수부 이전을 시작으로 산업, 경제, 일자리 구조가 혁신되면 부산은 청년이 떠나지 않고 기업이 찾아오는 도시로 도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