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법적 지위를 ‘물건’에서 ‘지각있는 생명체’로 바꾸는 민법 개정 논의가 다시 정치권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5월 1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분수대에서 강아지가 물줄기 사이를 뛰놀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사진 뉴스1
손솔 진보당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의원 5인(김남희·이용우·이주희·임미애·한준호 의원) 등 13명은 지난 15일 ‘동물의 비물건화’를 골자로 하는 민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고, 손 의원은 16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손 의원은 “‘선언적 의미를 넘어 실제 사건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선의취득과 유치권·질권, 긴급구조, 손해배상 등 민법 주요 내용에 동물에 관한 특례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개정안은 민법 제4장의 표제를 ‘물건’에서 ‘물건과 동물’로 바꾸고, 동물을 별도의 법적 지위로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 민법에서 동물은 물건으로 취급돼 손해배상이 교환가치 중심으로 제한되지만, 향후에는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치료비는 물론 반려인의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도 가능해질 수 있다. 아울러 반려동물 소유자의 학대 행위에 대한 제재로 소유권 제한 또는 박탈 가능성이 논의될 수 있고, 채무 불이행 시 반려동물을 일반 재산처럼 압류 대상으로 삼는 관행 역시 재검토될 여지가 있다.
법무부는 16일 때마침 대검찰청에서 관련 입법 쟁점 토론회를 열었다. 이계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실무상 이미 반려동물 가치를 초과하는 치료비와 위자료를 인정하는 판례가 축적되어 있다”며 “반려동물 살상 시 손해배상 특칙, 사후 보호를 위한 부담부 유증 및 신탁 제도 명문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다영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고 선언하면서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물건 규정을 준용한다’는 구조를 취할 경우, 실무 현장에서 재산권적 처분이나 담보·집행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두고 새로운 다툼과 불확실성을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민법상 ‘동물’의 개념(척추동물인지 무척추동물 포함인지 등)을 명확히 정의하지 않을 경우 실무상 잦은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모호성 문제도 제기했다.
이날 토론회는 정성호 법무장관의 입법 의지가 실린 행사였다. 정 장관은 지난 7일 페이스북에 “법무부 여론조사(한국갤럽 실시) 결과 ‘동물을 일반 물건과 구별해야 한다’는 응답이 88%에 달했다”며 “동물의 법적 지위 변화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모인 것”이라고 했다.
손솔 진보당 의원 등이 16일 국회 소통관에서 ‘동물 비물권화 3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다만, 제도 변화에 따른 법체계 혼선 우려도 적지 않다. 2021년 법무부가 민법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조항을 넣는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고, 21대 국회에서도 유사 법안이 발의됐지만, 여야가 합의했음에도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국회에 “동물의 비물건성 선언은 권리의 객체 개념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커 법학계 등 충분한 의견을 수렴하고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다.
축산업계에서도 법 통과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한돈협회 관계자는 “현행 동물보호법은 개·고양이·토끼·페럿·기니피그·햄스터 등 6종 만을 반려동물로 규정하고 있는데, 6종이 아닌 반려돼지는 기준을 모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축산업 경쟁력을 위해 반려동물과 산업동물은 명확히 구분돼야 하고, 국회 차원에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해 7월 관련 민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송재봉 민주당 의원은 “민법상 소유권과 손해배상 체계를 정비하는 취지로 축산업 등을 규율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관련 산업은 기존 체계로 관리하면 된다”고 했다.
16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별관에서 열린 '동물의 비물건화 입법 쟁점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동물 관련 법제화의 현주소와 개선 방향, '동물의 비물건화' 민법 개정의 필요성 및 의의, 압류 과정에서의 반려동물의 취급 등을 주제로 발제와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