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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폐허가 예술공간으로 변했다…방콕에 울린 ‘강릉의 소리’

중앙일보

2026.07.16 06:00 2026.07.1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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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단오제 무격부 전승자들로 이뤄진 전통연희집단 '푸너리'가 15일 오후 방콕 쿤스트할레 전시 '경계에서 함께 보기'의 개막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사진 파마리서치문화재단

강릉단오제 무격부 전승자들로 이뤄진 전통연희집단 '푸너리'가 15일 오후 방콕 쿤스트할레 전시 '경계에서 함께 보기'의 개막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사진 파마리서치문화재단

“에시자, 오시자!”
강릉의 소리가 방콕에 도착했다. 15일(현지시간) 오후 태국 방콕 도심의 낡은 건물. 강릉단오굿에서 악사들이 사용하는 구음이 울렸다. 구음은 국악기의 소리를 입으로 표현하는 것, ‘에시자, 오시자’는 ‘하늘과 땅의 모든 존재를 초대한다’는 의미다.

외벽은 낙서와 그을음으로 뒤덮여 있고, 내부엔 골조만 남은 날것 그대로의 거친 공간, 태국의 현대미술 1번지 방콕 쿤스트할레다. 2001년 큰불이 나면서 방치됐던 출판사 건물을 태국 재계서열 1위 CP그룹의 카오야이 아트재단이 매입, 보존해 지난해 미디어 아트 전시장으로 개관했다. 오노 요코, 마크 브래드퍼드도 전시했던 이곳에서 한국과 태국의 예술가들이 만든 강릉 이야기 다섯 편이 다음 달 9일까지 상영된다. 파마리서치문화재단과 방콕 쿤스트할레의 국제 협력 미디어 아트 전시 ‘경계에서 함께 보기’다.

15일 오후 방콕 쿤스트할레에서 전시 개막 퍼포먼스를 벌이는 '푸너리'와 이들이 나눠준 종이꽃을 든 참석자들. 방콕 쿤스트할레는 2001년 화재로 폐허가 된 인쇄소에 지난해 개관했다. 방콕=권근영 기자

15일 오후 방콕 쿤스트할레에서 전시 개막 퍼포먼스를 벌이는 '푸너리'와 이들이 나눠준 종이꽃을 든 참석자들. 방콕 쿤스트할레는 2001년 화재로 폐허가 된 인쇄소에 지난해 개관했다. 방콕=권근영 기자

개막식이 열린 이날 세월이 묻어나는 이곳 1층 홀에 징과 꽹과리, 장구 소리가 퍼졌다. 강릉단오제의 무격부 전승자들로 구성된 전통연희집단 ‘푸너리’ 4명이 전시 개막에 참석한 관객들에게 굿에 쓰는 종이꽃을 나눠주며 공연을 시작했다. 푸너리는 동해안 별신굿에서 굿의 시작을 알리는 빠른 장단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인 강릉단오제 속 단오굿을 동시대 무대 언어로 풀어내는 이들이 신명과 위로의 공연을 펼쳤다. 종이꽃 한 송이씩 손에 든 관객들이 뒤따르며 지신밟기 하듯 방을 옮겨 다녔다. 김운석 푸너리 대표는 “화재로 사망한 이들의 넋을 달래 고이 보내는 데 모두가 동참했다”며 “무대 공연과 달리 실제 공간에서 현지 사람들과 어우러진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방콕 차이나타운의 폐건물에 지난해 개관한 방콕 쿤스트할레. 사진 방콕 쿤스트할레

방콕 차이나타운의 폐건물에 지난해 개관한 방콕 쿤스트할레. 사진 방콕 쿤스트할레

이번 전시 ‘경계에서 함께 보기’에선 지난해 봄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 출품작 중 고등어·이양희·정연두·홍이현숙·아라야 라스잠리안숙 등 한국과 태국 예술가 5인의 작품이 상영된다. 매년 봄 태백산맥을 타고 부는 뜨겁고 건조한 바람인 양간지풍이 일으키는 산불, 좌절을 딛고 일어나 모 심는 사람들, 신주(神酒) 빚기로 시작하는 강릉단오제로 이어지는 대자연 속 인간의 기원과 노력을 담은 작품들이다.

2022년부터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을 주관해 온 파마리서치문화재단 박필현 이사장은 ”강릉에서 제작된 작품이 태국의 새로운 곳에서 선보일 수 있어 기쁘다. 다른 도시, 문화와의 협력을 이어가겠다”라고 말했다. 태국 CP그룹 마리사 치아라바논(강수형) 특별고문은 "예술은 대화를 시작하고 이해를 깊게 하는 힘이 있다. 이번 전시는 미래를 위한 협업과 우정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한국계인 그는 CP그룹 수파낏 치아라바논 회장의 부인으로 카오야이 아트재단을 설립했다.



권근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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