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을 통해 자신이 낙선한 2020년 대선에 중국이 광범위하게 개입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했던 정황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진행한 대국민 연설에서 2020년 대선과 관련한 중국의 개입 의혹에 대해 직접 언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황금시간대인 오후 9시 전국으로 생중계된 대국민 연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또 다시 부정선거론을 제기한 데 대해, 현지 언론들은 기존 음모론을 재탕한 것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백악관 정부 투명성 태스크포스와 대통령 정보자문위원회가 수집하고 미 정보기관들이 검토한 2020년 대선의 부정선거 의혹 자료가 나왔다면서, 그 주체로 중국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해당 자료를 근거로 “2020년 선거 때 중국은 역사상 최대 규모로 추정되는 정보 유출을 자행했다”며 “그 결과 중국은 2억2000만 건의 미국 유권자 파일을 불법적으로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유출된 정보에는 “유권자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정당 선호도를 비롯해 유권자 등록과 다른 비도덕적 활동에 필요한 민감한 데이터가 포함됐다”며 “이러한 데이터 유출은 전례 없는 선거 보안과 관련한 악몽을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중국 당국이 이 프로젝트를 위해 데이터 활용 부서를 뒀다”며 “(당시) 중국 공산당의 정책은 미국 대통령(트럼프 1기)에 반대하는 모든 요소를 활용해 미국 대통령의 득표수를 줄이고 그를 사임하게 하거나 재선을 막는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2024년 11월 5일 뉴햄프셔주 콜브룩에 위치한 콜브룩 아카데미 및 초등학교 투표소에서 한 유권자가 투표 부스로 들어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대국민 연설에서 2020년 대선 때 중국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음모론을 내세우며 당시 선거에서 자신이 승리했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중국의 해당 부서가 구체적으로 어떤 기관에 소속돼 있었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미국 대선에 개입했는지 등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은 채 “미국의 투표 집계 시스템은 득표수 조작 등 외부의 선거 개입 시도에 취약하다”고만 말했다.
2021년 1월 6일, 워싱턴의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AP=연합뉴스
또 미국 정·재계와 언론에 포진한 실세를 의미하는 ‘딥스테이트’ 구성원들이 중국의 대선 개입 정보를 은폐 또는 축소했고, 중국이 미국의 언론인들을 매수했다고 주장하며 “최소한 러시아·중국·이란·북한을 비롯한 미국의 적대국들과 비국가 단체들이 미국의 선거 인프라를 침해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2021년 1월 6일, 워싱턴의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어 “우리 자신의 (선거) 시스템이 과거처럼 다시는 절대로 해킹되거나 침해되지 않도록 긴급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의회가 ‘세이브 아메리카 법안(Save America Act)’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권자 신분증 제출을 의무화하는 ‘세이브 아메리카 법안’은 부정선거를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핵심 입법으로 추진 중이다. 결국 중국의 선거 개입 의혹을 내세워 민주당에 유리한 우편투표의 효력을 상실시켜 자신에게 유리한 선거 지형을 만들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실시간 팩트체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내용이 대부분 기존에 알려진 내용이거나, 일각에서 회자하는 음모론을 ‘재탕’한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JD밴스 미국 부통령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1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진행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 현장에 도착하고 있다. 두 사람은 유력한 차기 공화당 대선 후보로 꼽힌다. AP=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는 “온도조절장치를 통한 중국의 투표기 해킹, 이탈리아 위성을 사용한 투표 결과 조작 주장, 선거 관리원의 ‘조 바이든 표’ 반입 등 공상적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며 “2020년 대선을 조사한 지방 및 연방 차원의 조사와 법원 절차에서 트럼프가 주장한 부정행위가 밝혀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CNN은 러시아·중국·이란·북한의 선거 데이터 조작 능력은 이미 정보당국이 우려한 바 있지만, 이들이 미국 각지에 분산된 선거 시스템에 전방위적으로 개입하기는 어렵다는 점도 함께 지적됐다고 평가했다. 또 “시민권이 없는 27만8000명이 유권자로 등록됐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서도 “과장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NBC는 “미 정보당국은 2021년 보고서에서 중국이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작전을 검토했으나 실행하지는 않았다고 ‘높은 신뢰도’로 판단했다”며 “중국은 (바이든과 트럼프 중) 누가 이기든 개입이 적발될 위험을 감수할 만큼 중국에 유리하다고 보지 않았다”는 정보당국의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일축하며 “미국 대선에 개입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류창 주미 중국대사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선거 결과는 미국 국민의 투표로 결정된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반박했다. 러시아도 중국과 같은 입장을 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미국 대통령은 출처가 알려지지 않은, 입증되지 않은 정보를 인용하고 있다”며 “러시아는 다른 나라 내정에 간섭한 적이 없으며 누구도 우리 내정에 간섭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 브리핑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민 연설 방송이 방영되고 있다. 이날 일부 지상파 방송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생중계 하지 않았다. EPA=연합뉴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은 26분간 생방송으로 진행됐다. 다만 친(親)트럼프 성향의 폭스뉴스는 대국민 연설의 전체를 생중계한 반면 CBS는 연설 일부는 중계한 뒤 트럼프 대통령 발언의 진위 등을 분석하는 화면으로 전환시켰다. ABC·NBC 등은 생중계를 아예 하지 않고, 각각 퀴즈쇼와 동물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전날 발표된 워싱턴포스트(WP)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의 여론조사(8∼13일, 미국 성인 2648명 대상) 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37%로 나타났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그를 ‘강력히 지지한다’는 응답은 15%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초 27%에 달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은 지난 2월 19%를 거쳐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