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를 둘러싼 새로운 논쟁에 불이 붙었다. 지난 3월 시행된 ‘노란봉투법’을 적용해 기업의 중장기 투자 결정을 단체 교섭 대상으로 볼 것인지 공방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으로 직원이 들어가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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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투자, 노조와 교섭해야 할까
논란은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가 호남 프로젝트를 2027년 단체교섭 의제로 올리겠다고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노조는 “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는 향후 인력 배치, 근무 환경 등 조합원의 근로 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업상 결정”이라며 “2027년 단체교섭에서 이를 정식 의제로 다루겠다”고 밝혔다. 자체 설문조사에서 조합원(약 8300명)의 84%가 프로젝트에 반대했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핵심 쟁점은 호남 팹(공장) 건설이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칠지’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쟁의의 범위를 넓혀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을 교섭 대상에 포함했다. 회사의 경영 판단이라도 직원의 고용이나 근무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면 노조가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 예컨대 회사가 경영상 결정을 실행하면서 정리해고, 구조조정 등에 따른 배치전환을 추진하는 경우 직원 고용이나 근무지, 임금 같은 처우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근로조건에 미칠 영향이 막연한 가능성에 그치는 단계라면 노조가 교섭을 요구하기 어렵다고 본다. 고용노동부도 “공장 증설 자체는 교섭 대상이 아님이 명확하다”고 선을 그었다. 노동부 해석 지침에 따르면 기업의 합병·분할, 매각·해외투자 등 의사결정 자체는 원칙적으로 교섭 대상이 아니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호남 프로젝트는 구체적인 투자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고 기존 공장을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신규 증설”이라며 “공장 이전은 기존 인력의 대규모 전환배치를 전제하는 경우가 많지만, 신규 증설은 오히려 현지 충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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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마다 교섭 요구?…노란봉투법 해석 공방 본격화
재계는 이번 사례가 비슷한 분쟁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지방 공장 증설이나 해외 투자에는 일부 인력 재배치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며 “인력 이동을 수반하지 않는 투자 결정은 사실상 찾기 어려운 만큼, 이 정도의 연계성만으로 교섭 대상을 인정하면 대부분 투자가 교섭 대상인 것으로 왜곡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란봉투법 시행 초기인 만큼 노조가 노란봉투법을 빌미삼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사측의 투자 계획을 교섭 대상으로 제안한 뒤 사측이 이를 거부하면 법원 판단을 받는 사례가 잇따를 수 있어서다. 주주단체의 반발도 거세다. 대한민국주주운동본부는 “15년 이상을 내다보고 추진하는 투자 계획까지 교섭 대상으로 선언한 것은 노란봉투법을 근거로 노동이 경영 영역까지 개입하려는 것”이라며 “장기 투자와 이에 따른 이익 배분은 주주가 부여한 경영진의 권한이자 주주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지난 3월 노란봉투법 개정 이후 관련 법률 보완을 위한 개정안만 이미 12건이 접수됐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투자 때마다 노조가 일단 제동을 걸고 조합원 결집이나 여론전을 겨냥한 다목적 카드로 쓸 가능성이 크다”며 “이번 사안이 향후 노란봉투법 적용 범위를 가늠할 잣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