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주미국대한민국대사가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외교부에서 조현 외교부 장관과 면담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강경화 주미 대사가 이례적으로 닷새간 귀국해 한·미 관계를 둘러싼 워싱턴 조야의 우려를 정부 내에 공유한 가운데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양국 관계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관측에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미국의 불만 누적으로 동맹 현안이 쌓이는 데 대한 외교·안보 라인의 위기감과 달리 경제 라인은 낙관론을 유지하는 것으로, 정부 내부의 상황 인식에 미묘한 온도 차가 드러나고 있다.
김 실장은 강 대사가 미국으로 돌아간 19일 방송 인터뷰에서 강 대사의 일시 귀국이 한·미 관계 악화를 상징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아니다. 그건 아니다”고 거듭 부인했다. 한·미 간 최대 현안인 대미 투자에 대해선 “미국도 우리가 (대미투자특별)법을 만들고 대미 투자 공사를 설립하고 사람을 뽑아 적정한 스케일대로 가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일본에 비해 대미 투자 속도가 느리다는 지적에는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미국과 합의했고 (투자를 위한)법이 필요 없다”는 취지로 부인했다. 이른바 ‘동맹파 대 자주파’ 갈등이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도 “그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1호 투자 현실화가) 8, 9월에는 이뤄져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강 대사는 국내에 머무는 동안 정부 고위 당국자들과 만나 미 행정부의 기류를 전달하는 데 주력했는데, 직후 이런 발언이 나오면서 정부 안팎에선 “묘한 엇박자”란 말이 나왔다. 별도의 정상외교 일정이나 공식 행사가 없는 상황에서 주미 대사가 본국을 찾은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로, 이번 귀국 자체가 대미 투자 등 핵심 현안을 맡은 경제 부처에도 현지의 긴장감을 직접 전하려는 성격이 컸기 때문이다. 적신호를 전하러 들어온 대사가 돌아간 날 청와대에선 “문제없다”는 메시지가 나온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김용범 정책실장, 위성락 안보실장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강 대사는 지난 15일 귀국해 조현 외교부 장관 등을 만난 데 이어 16일엔 재정경제부와 산업통상부 등 경제부처 관계자들까지 참석 범위를 넓힌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 배석했다. 회의에서는 쿠팡 사태와 정보통신망법, 대미 투자 등 개별 현안이 장기화할 경우 한·미 안보 협의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미국 현지의 문제의식이 구체적으로 공유됐다고 한다. 익명을 원한 소식통은 “NSC 참석 범위를 확대해 미국 측 우려에 대한 경제 라인의 이해를 돕는 측면이 있었다”며 “갈등 현안을 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심도 있는 논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외교·안보 라인 안팎에선 “한·미 관계가 이보다 안 좋았던 적도 드물다”는 우려가 짙다. 한 여권 관계자는 “미국은 갈등을 빚는 한·미 현안들에 대해 특정 부처 소관이라든지, 국내적인 절차 문제가 있다고 설명해도 ‘어쨌든 이재명 정부 안에서 벌어진 일 아니냐’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쿠팡 사태와 정보통신망법 시행을 둘러싼 마찰에 더해 손현보 목사 구속 문제를 향한 미국 내 ‘마가(MAGA)’ 진영의 반발까지 이어지면서 한·미 관계 전반의 부담을 키우고 있단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법무부가 지난 1일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국제형사사법대사를 지낸 모스 탄의 출국정지를 이달 31일까지 연장한 것 역시 미국 보수 진영의 불신을 키울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김용범 정책실장이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6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스1
특히 핵심 뇌관인 대미 투자를 두고도 김 실장과 정반대의 진단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외교 소식통은 중앙일보에 “여러 한·미 현안 가운데 미국 측이 가장 비중을 두는 것은 대미 투자”라며 “그런데 아직 구체성이 없는 단계”라고 지적했다. 그간 미국 측은 백악관과 국무부 등 여러 채널을 통해 “1호 투자가 빨리 나와야 한다”, “투자 이행이 너무 늦다”는 우려를 전달해 왔다. 미국이 지난 5월 투자 후보 사업 목록을 한국 측에 전하며 공을 한국으로 넘겼지만, 정부는 상업적 합리성 등을 검토하며 아직 1호 사업을 정하지 못했다.
김주원 기자
이 가운데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22일 미국으로 출국한다. 공식적인 이유는 23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조선협력센터 개소식 참석과 조선 협력 관련 후속 논의지만,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다시 만나는 만큼 대미 투자 지연 등 현안을 둘러싼 미국 측 불만을 달래려는 성격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