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1호’. 1950년 12월 25일 함경남도 흥남부두에서 피란민 1만 4500명을 싣고 부산으로 가던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태어난 손양영(전 함경남도지사·76)씨의 애칭이다. 그를 비롯해 5명의 새 생명이 흥남부두의 탈출선에서 태어나자 미군은 ‘크리스마스의 기적, 김치 1~5호’라 불렀다. 손씨는 “우리가 타고 온 빅토리호나 그 후 생의 버팀목이 되어준 부산은 ‘노아의 방주’나 다름없었다”며 “피란민들이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일구어낸 공동체 정신과 당시 전 세계가 보여준 인류애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19일부터 열흘 간 부산 벡스코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리면서 정부와 부산시도 2030년 ‘피란수도 부산 유산 11곳’의 등재를 위해 본격적으로 나섰다. 부산시 등이 이 기간에 부산항과 영도다리, 유엔묘지 등 피란수도 유산 현장을 알리기 위한 전시 및 강연, 현장 투어 등 50여개의 크고 작은 부대행사를 마련하면서 피란시기 부산의 역사가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정부는 수도를 대전(6월 27일), 대구(7월 16일)를 거쳐 부산으로 옮겼다. 그해 8월 18일부터 1953년 8월 14일까지 1023일간 부산은 피란수도가 됐다. 수많은 피란민이 부산 등 남쪽으로 내려왔다. 이들은 주로 부산 중구 용두산공원 인근에 몰렸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용두산은 부산항과 지척이고, 이들에게 필요한 일거리와 생필품을 주는 시장도 가까워 피란민들이 많이 정착했다”고 말했다.
당시 부산항은 각종 군수 및 구호물자가 들어와 활황이었다. 1953년 부산항 전체 물동량은 127만8200t으로 46년에 비해 70배 늘었다. 이 물건들을 옮기려면 많은 노동자가 필요했는데 그 자리를 피란민들이 채웠다. 자갈치·국제·부평시장 등도 날품팔이, 좌판을 하는 피란민들로 넘쳤다. 전쟁 전 47만여 명이었던 부산 인구는 55년 100만명 이상으로 늘었다.
이 시기 전후 부산 부전·전포동 등 오늘날 부산 최대 번화가인 서면 일대는 훗날 재계를 이끈 대기업의 모태 기업들도 둥지를 틀었다.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은 락희화학공업사를 세워 바르면 동(銅)처럼 피부에 윤기가 돌아 ‘동동구리무’라 불렸던 ‘럭키크림’을 만들었다. 삼성 이병철 회장은 51년 삼성물산을 세워 일본에 고철 등을 수출하는 한편 53년에는 제일제당을 설립했다. 전성현 동아대 교수는 “당시 피란민의 풍부한 노동력과 대기업의 모태기업 등 창업이 맞물리며 우리나라 산업기반이 다져졌다”고 말했다.
부산 피란수도 유산은 2023년 5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공식 등재됐다. 지난해 11월에는 국가유산청의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 선정 심의를 통과했다. 내년까지 예비평가를 거쳐 2029년 등재신청서를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이번 유산위원회는 등재 관련 위원들이 모두 참석해 피란수도 부산 유산을 직접 선보이고 알릴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며 “등재가 되면 부산이 역사 문화도시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원 소장은 “전쟁으로 단절될 뻔했던 우리나라 정부 기능은 물론, 교육·역사·문화·예술이 그래도 명맥을 이은 것은 부산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라면서 “특히 전쟁 중에도 인류애를 잃지 않고, 적군까지 품었던 부산은 유엔 헌장과 유네스코 헌장, 제네바 협약 등 국제 조약에 근거한 인류 평화의 가치를 보여주는 전 세계 유례가 없는 유산”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