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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대충 지을 거면 아예 시작하지 마라

중앙일보

2026.07.19 08:08 2026.07.1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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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화 내셔널부 기자

한은화 내셔널부 기자

공공건축판이 요즘 시끄럽다. 대통령 집무실 건립을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설계공모를 거쳐 당선작까지 뽑았는데도 두 달 넘게 발표조차 못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수정 지시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다.

애초에 무리였다. 통일 전까지 다시 없을 국가 프로젝트를 ‘대통령 임기 내 완공’이라는 일정부터 정해 놓고 시작했다. 이 사업은 속도전보다 숙의가 먼저였다. 국격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어떤 철학을 담을 것인지부터 충분히 논의했어야 했다. 수천억원을 들여 짓는데 ‘불통의 상징’이 돼 버린 청와대를 세종에 또 만들 수는 없지 않나.

반면 최근 통일부가 추진하는 한반도평화공존센터 건립 프로젝트는 시작만큼은 신선했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들어설 이 시설은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했던 국립북한인권센터를 평화공존센터로 바꾼 사업이다. 총사업비는 397억5000만원이다.

대통령 세종집무실 등이 들어설 세종 국가상징구역. [연합뉴스]

대통령 세종집무실 등이 들어설 세종 국가상징구역. [연합뉴스]

정부 계약예규에 따르면 이 정도 규모의 설계공모는 조달청에 맡겨야 한다. 하지만 통일부는 그에 앞서 건축가부터 먼저 뽑기로 했다. 설계안이 아니라 건축가 포트폴리오 등을 평가해 다섯 명을 선정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들을 대상으로 조달청 지명공모를 진행해 설계안을 뽑는다. 정부 부처 최초의 시도다.

조달청 공모 시스템에 대한 건축계의 불신 때문에 나온 방법이다. 조달청은 심사위원 풀에서 무작위로 선정된 심사위원들이 작품을 평가한다. 절차적 공정성은 확보했더라도 좋은 건축을 가려낼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돼 왔다. 심사위원 로비 의혹도 끊이지 않는다. 통일부가 조달청 공모 전에 실력있는 건축가부터 뽑고 그 안에서 최종작을 선정하려는 이유다.

적극행정이라 꼽을만한 사례다. 하지만 혁신적인 공모 방식을 뒷받침하는 시스템은 여전히 제자리다. 가장 큰 우려는 공사비다. 이번 사업은 기존 공공건축 유사 사례를 평균 내는 방식으로 예산이 책정됐다. 건축계에선 문화·전시시설에 요구되는 공간의 질과 상징성을 구현하기에는 부족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무리 뛰어난 작품을 선정해도 공사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완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공공건축은 한 번 지으면 수십년, 길게는 백년 넘게 도시와 국가의 얼굴이 된다. 대통령 집무실이든 한반도평화공존센터든 마찬가지다. 잘 지을려면 제대로 기획하고,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낫다. 그것이 국민의 세금을 가장 책임 있게 쓰는 길이다.





한은화([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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