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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현의 글로벌 이슈 진단] 중남미 휩쓴 ‘블루 타이드’, 트럼프 효과 아니다

중앙일보

2026.07.19 08:16 2026.07.19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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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현 논설위원

차세현 논설위원

지난달 말 페루 대선에서 4수에 나선 보수 우파 성향의 게이코 후지모리(51) 후보가 승리했다. 그는 1990~2000년 재임 후 인권 유린과 부패 혐의로 16년간 복역한 고(故)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이다. 그러나 세계의 이목은 지난해부터 중남미를 휩쓸고 있는 ‘블루 타이드(우파 집권 물결)’가 정점으로 치닫느냐에 쏠렸다. 올해 치러진 남미 대선 결과를 보면 볼리비아, 코스타리카, 칠레, 콜롬비아 등에서 우파 정권이 잇따라 들어섰다. 지난해엔 남미 경제 3위의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파라과이, 에콰도르, 온두라스 등 대선에서 보수 우파 진영이 승리했다. 이제 중남미에서 좌파 정부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브라질과 멕시코, 남미의 북유럽이라고 불리는 우루과이 정도만 남았을 뿐이다.

좌파의 국가 운영 실패에 실망
질서와 경제발전 내건 우파 선택
자원 활용한 공급망 적극 참여
미국 편중 아닌 균형외교 나서

지난 15일 취임한 게이코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이 지지자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5일 취임한 게이코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이 지지자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에서 중남미를 단순히 미국의 ‘뒷마당’이 아니라 ‘전략 공간(strategic space)’으로 재정의하는 서반구 전략을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압박 카드를 무기로 중남미 좌파 정권을 압박했고, 친미·강성 우파 지도자들에 대한 노골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렇다면 중남미의 ‘블루 타이드’는 트럼프의 승리일까.

남은 ‘핑크 타이드’는 브라질·멕시코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개입은 ‘블루 타이드’를 촉진하는 변수가 될 순 있지만, 핵심 요인은 좌파 정부의 실패라고 분석한다. 2000년대 들어 중남미를 휩쓸었던 ‘핑크 타이드(좌파 집권 물결)’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개혁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핑크 타이드’는 시장보다 국가의 역할을 강화하고 성장보다는 분배, 효율성보다는 사회적 형평성을 우선시했다. 때마침 중국의 산업화에 따른 원자재 수요 확대는 석유, 구리, 철광석, 대두 등 중남미 주요 수출품의 가격을 끌어올렸고, 각국 정부는 이를 토대로 복지 확대에 적극 나섰다. 한마디로 ‘핑크 타이드’는 분배형 국가체제였다.

그러나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각국의 재정 수입이 감소하면서 복지 확대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이들 국가는 복지 확대에 막대한 재정을 쓰다 보니 호황을 활용한 산업 육성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와 함께 좌파 장기 집권에 따른 부패, 행정 비효율, 공공부문의 비대화 등의 폐해도 터져나왔다. 중남미 국가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고질적인 재정 위기와 초인플레이션에 노출됐고 조직범죄, 마약 카르텔, 불법 이민 등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상섭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핑크 타이드의 한계는 국가의 역할은 확대했지만, 국가의 역량을 강화하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이번 블루 타이드는 ‘분배국가’에서 이른바 ‘역량 국가(Capable State)’로의 전환”이라고 분석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핵심 공급망 참여 통한 경제발전 추구
실제 우파 정당들은 지난해와 올해 대선에서 재정 건전성과 시장 개혁(아르헨티나), 치안 회복과 강한 국가(엘살바도르), 조직범죄 대응(에콰도르), 민주안보(콜롬비아)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집권에 성공했다. 이번 페루 대선에서도 후지모리 후보는 엘살바도르식 초대형 교도소 운영 등 강력한 치안, 민간 투자 촉진, 관료주의 축소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반면에 0.27%포인트 차로 패배한 집권 좌파 로베르토 산체스 후보는 부의 공정한 재분배를 위한 헌법 개정, 경제에서의 국가 역할 확대, 사회적 지출 증가 등 전형적인 좌파정책을 강조했다.

미·중 전략 경쟁 시대는 공급망 확보의 경제안보 시대다. 자원 부국인 중남미 국가들엔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온 셈이다. 브라질의 철광석과 농산물, 칠레와 페루의 구리, 아르헨티나·볼리비아·칠레의 리튬 등 이들 국가는 핵심 공급망 국가다. 여기에 파나마의 운하와 페루의 찬카이항은 공급망을 위한 물류 허브다. 그러나 과거의 실패를 경험한 국민은 이번엔 ‘핑크 타이드’가 아니라 경제안보시대의 국가 리더십으로 ‘블루 타이드’를 선택했다. 중남미의 우파 집권세력은 치안 회복 외에 국가역량 강화를 통한 투자 확대와 공급망 참여를 경제발전 전략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 대목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경제안보 중시 전략과 맞아떨어졌다.

트럼프는 ‘블루 타이드’의 방해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중남미 전략이 ‘블루 타이드’ 확산의 핵심 요인이 아니라는 점은 두 가지 점에서 확인된다. 하나는 중남미 ‘블루 타이드’ 국가 중 상당수가 미·중 사이에서 어느 한 강대국을 선택하기보다는 강대국 경쟁을 외교 자산으로 활용(레버리지 외교)하는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해 온 브라질은 물론, 칠레와 페루 역시 핵심 광물을 외교적 레버리지로 활용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역시 친미 성향을 강화하면서도 중국과의 금융·광물 협력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 등에 대한 반감이 오히려 기존 좌파 정부에 대한 지지를 강화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트럼프에 강하게 맞서 열세를 극복하고 재집권에 성공한 진보 성향의 캐나다 마크 카니 자유당 정부의 사례가 중남미에서 재연될 수 있단 얘기다. 오는 10월 대선을 앞두고 브라질에선 그간 각종 여론조사에서 ‘브라질의 트럼프’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장남인 극우 자유당의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상원의원이 집권 브라질 노동자당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사진)현 대통령과 박빙이었다. 그러나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최근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브라질산 주요 상품에 25%의 보복관세 부과를 발표하자 여론의 흐름이 룰라 대통령 지지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달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 연장 불허 등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끊임없는 통상 압박을 받아온 중도 좌파 성향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의 국내 지지세도 공고한 편이다.





차세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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