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12월 월간조선은 이병철(李秉喆) 삼성그룹 창업자를 인터뷰했다. 조선일보 선우휘(鮮于煇) 논설고문과의 대담 형식이었고 나는 기록자로 배석했다. 당시 73세이던 이 회장은 반도체 사업을 벌여 놓은 직후였다. 노년(老年)의 무모한 도박이란 회의론을 비웃듯이 마치 대유전을 발견한 사업가처럼 열정적으로 이 물건이 한국의 미래를 이끌 것임을 역설했다. 선우휘 선생도 식민지, 전란, 근대화 시대를 관통하면서 장교·언론인·소설가로 살았던 분이라 서로 이야기가 잘 통해 점심을 같이하면서 네 시간을 대담했다. 이병철의 생애 가장 긴 인터뷰일 것이다.
이 회장은 자신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재미’라고 했다. “가정에 돈이 많아 돈을 꼭 벌어야 할 사정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놀기는 심심하고 갑갑하고. 그래서 사업을 하였는데, 이게 재미있더란 말입니다. 재미, 그래서 재미있게 살기 위하여 사업을 한 셈입니다.”
그는 “이제는 뭐 삼성을 키워야겠다, 그런 욕심이 없어졌어요”라고 했다. “나라 전체를 위하여 도움이 된다면 미력(微力)이나마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현재 갖고 있어요. 제가 회의 때 강조하는 게 있습니다. 삼성이 중요하냐, 국가가 중요하냐. 국가가 중요하다. 국가가 부흥하면 삼성 같은 건 망해도 또 생길 수 있다. 국가가 망하면 삼성은 영원히 없어진다. 그러니 국가가 우선이다.”
1987년 8월 삼성전자의 기흥 반도체 생산 3라인 기공식. 오른쪽부터 이병철 회장, 이건희 회장. [사진 삼성전자]
그는 “새로 사업을 시작할 때가 가장 신이 나고 재미있다”고도 했다. “뭘 새로 창조한다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 건 저의 본능인 것 같습니다. 지금 시작한 반도체처럼 처음 사업을 할 때는 저녁에도 그 생각, 자고 일어나서도 그 생각, 뭣이 부족한 것이 없나, 있으면 보강하고 물어보고, 회의를 해서 안되는 게 있느냐 또 알아보고 일을 맡기고, 계속 뒤를 체크하면서 전체를 전망해 가면서 일을 하지요.”
그런데 만들어 놓은 회사가 잘 돌아간다는 보고를 받는 즉시 관심을 돌리곤 새 사업을 찾아 나선다고 했다. 그는 이 대목에서 “나는 똑같은 일을 하라고 하면 정말 싫어!”라고 힘주어 말했는데, 그 표정은 천진난만한 소년 같았다. 이 회장은 그때 벌써 삼성이 일본을 따라잡을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사원 교육을 일본보다 더 시키고 자신이 일본 재벌 회장들보다 훨씬 더 일을 많이 한다는 점이었다.
칠순에 반도체 신사업, 끝없는 도전 시작 때부터 일본 앞지른다 확신 삼성보다 나라의 미래를 앞세웠던 위대한 교사이자 혁명가·예언가
나는 월간조선 편집장 시절이던 1992년에 대선에 출마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자신보다 다섯 살이 많았고 라이벌이기도 했던 이병철 회장에 대하여 이렇게 평했다.
“그분의 가장 큰 공은 반도체 산업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나라에서 다시 태어나기 어려운 기업가입니다. 내게도 ‘흙을 아무리 파고 산을 허물어도 돈이 남느냐’며 반도체 사업을 권하기도 했습니다. 그분이 살아 계실 때 입 바른 소리를 많이 해 경제계의 방풍림 노릇을 했는데 지금은 제가 그 역할을 하고 있지요. 항상 존경하는 마음가짐으로 매년 산소에 가보고 있습니다.”
이병철의 철학이 담긴 사훈(社訓)은 “사업보국·인재제일·합리추구”이다. 그는 1982년 4월 2일 미국 보스턴대학 박사학위 기념강연에서 이렇게 요약했다.
“전 생애를 통한 기업활동에서 배우고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의 존립 기반은 국가며 따라서 기업은 국가와 사회 발전에 공헌해야 한다는 점이다. 경영 성과를 세금·헌금·배당 등으로 분배해 국가 운영의 기초를 풍부하게 하면서 기업 자체의 유지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기업의 사회적 봉사다.”
이병철이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세운 지 88년이 지난 올해 삼성전자의 2분기 매출액은 약 170조, 영업이익은 약 90조 원을 기록했다. 매출액의 절반이 이익이라니! 세계 산업화 역사상 유례가 드문 실적이다. 올해 연간 매출액은 약 5000억 달러로 세계 10위권, 영업이익은 세계 1위로 예상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대규모 반도체·AI 투자 계획을 발표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하이닉스 회장에게 허리를 굽혀 경의를 표한 장면은 가히 역사적이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 질서 속에서 기를 펴지 못했던 상공인(商工人)들이 이승만·박정희 같은 정치지도자의 뒷받침으로 초일류 기업을 만든 데 대하여 사(士)자 계층의 대표로서 감사와 미안함을 전하는 것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별세한 1987년은 정치 격변기였고 삼성은 반도체 과잉 투자로 위기에 처했다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병철은 자신의 결단이 한국의 미래를 열 것이란 확신을 놓지 않고 눈을 감았을 것이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구호를 실천한 이병철-이건희(李健熙)-이재용(李在鎔) 3대의 사업보국은 ‘아낌없이 주고 가는 나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김일성의 ‘사람중심 철학’은 인간 말살의 사기였지만 이병철의 ‘인재제일(人才第一)’은 인류공영의 철학이었다. 그는 위대한 교사, 그리고 진짜 혁명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