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경하는 서울 시민 여러분, 그리고 수도권 주민 여러분. 여러분이 겪고 계신 불편을 생각하면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
2004년 7월 4일 옛 서울시청 별관에서 나는 무거운 심정으로 연단에 섰다.
그로부터 사흘 전, 나는 1년여의 준비 끝에 버스 중앙차로 도입과 노선 개혁, 환승 할인 시스템을 골자로 하는 대중교통체계 개편을 단행했다. 수십년간 정체돼 개혁이 절실했던 그 분야에 제대로 칼을 댄 거다.
서울시 대중교통체계 개편 나흘만인 2004년 7월 4일 이명박 서울시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런데 예상 밖의 혼란이 벌어졌다. 버스 번호가 대대적으로 바뀌면서 익숙한 버스가 사라지자 시민들은 뭘 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생경한 카드 결제 시스템의 시행은 당황의 강도를 키웠다. 설상가상으로 일부 카드 단말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승객의 혼란은 극에 달했다. 그들은 분노했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도 연일 나를 비판했다. 특히 나와 나의 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던 세력은 마치 물이라도 만난 듯 과도한 비난을 쏟아냈다. 위기였다.
서울시 교통국과 시장 비서실에는 시민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항의에 전화를 받다 끝내 울음을 터뜨리는 직원까지 있었다.
서울시 버스 개편 첫날인 2004년 7월 1일 혼란스러운 시민들이 임시로 붙인 노선 안내도를 살펴보면 있다. 중앙포토
절박했다. 단순히 여론의 비판이 두려운 게 아니었다. 이대로 시민의 신뢰를 잃으면 1년 넘게 준비한 버스 개혁 자체가 무너질 수 있었다. 어렵게 설득한 버스업계가 등을 돌리고, 조직 내부조차 흔들리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갈 판이었다. 한번 물러서면 다시는 버스 개혁을 시도하기 어려울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시민들이 겪는 불편이었다. 시민을 편하게 하겠다고 시작한 개혁이 오히려 시민들을 길거리에서 헤매게 만들고 있었다. 밤마다 보고를 받고 문제점을 하나하나 점검했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도대체 어디서 잘못된 것인가. 무엇을 놓친 것인가.’
그 질문이 밤낮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새 시스템은 결코 대충 시행된 게 아니었다. 다른 모든 사안과 마찬가지로 나는 대중교통체계 개편 역시 철저하게 준비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아니, 어떻게 버스만?”...교통 혁신의 현장서 본 놀라운 광경
2003년 1월 나는 지구 반대편에 있었다.
낯설기 이를 데 없는 브라질의 쿠리치바란 곳이었다. 그 생소한 도시는 당시 세계적으로 주목받던 교통 혁신의 상징이었다.
직접 목도한 현장은 과연 인상적이었다. 쿠리치바는 버스를 마치 다른 나라의 지하철처럼 운행했다. 요금은 버스가 아닌 원통 모양의 버스 정류장에서 지불하고, 추가 요금 없이 환승이 가능했다. 버스도 지하철처럼 노선이 구분돼 있었다. 버스 전용도로를 운행하는 간선급행버스와 소수의 정류장에만 정차하는 급행버스, 도시 외곽과 간선도로를 잇는 지선버스, 일반 버스 등 모두 2200여대의 버스가 온종일 쉴 틈 없이 운행했다.
세계적인 교통 혁신 도시인 브라질의 쿠리치바에선 버스를 지하철처럼 운행하고 있다. 버스 전용차선 옆에 마련된 원통 모양의 버스 정류장에서 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이명박대통령기념재단
그 덕택에 버스의 수송분담률이 무려 80%에 이르렀다. 갈수록 버스 이용객이 줄던 서울과는 차이가 컸다.
물론 그 시스템을 그대로 들여올 순 없었다. 서울은 인구 170만명 수준인 쿠리치바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초거대도시다. 어설프게 벤치 마킹했다가는 교통대란만 초래하기에 십상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30시간 동안 깊은 고민에 빠졌다. 비행기 창문 너머로 한국 땅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나는 결단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