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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미술의 한 장르 넘어 한국현대사와 함께한 ‘민중미술’

중앙일보

2026.07.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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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선생님 등 우리 주변 보통 사람들을 흔히 ‘민중’이라고 지칭합니다. 국가나 사회를 구성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그린 미술의 한 장르로 민중미술이 있어요. 민중미술은 동학농민혁명, 4·19혁명, 5·18민주화운동과 같은 역사적 사건뿐 아니라 노동자와 농민의 삶, 여성의 이야기, 학생들과 도시의 일상처럼 이전에는 미술에서 자주 다루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작품에 담았습니다.

그럼에도 민중미술은 약간 생소하게 느껴지는데요. 민주화운동기념관 개관 1주년과 제39주년 6·10민주항쟁을 맞아 열리는 특별전 ‘1987 개화(開花): 다시 피는 유월’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민중미술 작품 40점을 만날 수 있죠. 장민지 전시운영팀 대리는 “1970~80년대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기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며 “그래서 미술가들과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던 학생들은 그림을 통해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더 자유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죠.
1987년 미국에서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응원하기 위해 진행된 오월 민주화 대행진 포스터에 사용됐던 그림을 이번 전시를 위해 재제작한 김봉준의 ‘1987 유월민주항쟁 추동하는 미주동포대행진’(2026). 작품 옆에 당시 포스터 복사본이 놓여 어떻게 활용됐는지 짐작케 한다.

1987년 미국에서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응원하기 위해 진행된 오월 민주화 대행진 포스터에 사용됐던 그림을 이번 전시를 위해 재제작한 김봉준의 ‘1987 유월민주항쟁 추동하는 미주동포대행진’(2026). 작품 옆에 당시 포스터 복사본이 놓여 어떻게 활용됐는지 짐작케 한다.


“민중미술은 미술관에만 걸리는 그림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함께 볼 수 있도록 거리 벽화나 대형 걸개그림, 쉽게 제작해 나눠 볼 수 있는 판화 등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민주화운동이 펼쳐지던 거리에서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알리고, 모두가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게 했어요.”

전시는 총 3부에 걸쳐 1980년대부터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했던 사람들의 뜨거운 열망과 희망을 담은 민중미술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관람객을 처음 맞이하는 건 문영태의 ‘박종철 영정’ 판화죠. 6·10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 박종철 영정 판화는 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었는데요. 작품 옆 당시 기사 사진을 살핀 뒤 고개를 돌려 벽면을 가득 메운 생명평화미술행동의 ‘남영동-칠성판’까지 보면 그때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죠.
1980년대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춤으로 저항하고, 사람들을 위로했던 이애주 교수의 춤을 형상화한 최병수의 ‘들춤’(1987).

1980년대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춤으로 저항하고, 사람들을 위로했던 이애주 교수의 춤을 형상화한 최병수의 ‘들춤’(1987).


억압의 시대를 뚫고 피어난 민중항쟁의 출발점을 보여주는 신학철의 ‘한국현대사-부활’을 지나면 이명복의 ‘별이 되다-이한열 열사’, 최병수의 ‘들춤’ 등이 거리로 나온 시민들의 저항과 해외까지 이어지는 연대 의식을 생생하게 전해요. 김봉준의 ‘1987 유월민주항쟁 추동하는 미주동포대행진’은 1987년 미국에서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응원하기 위해 진행된 오월 민주화 대행진 포스터에 사용됐던 그림을 이번 전시를 위해 2026년 재제작한 건데요. 재미동포들의 피플파워(민중의 힘)를 보여주자며 워싱턴 D.C에서 만납시다라고 적힌 당시 포스터가 함께 걸려 눈길을 끕니다.

이처럼 실제 민중미술 작품이 어떻게 사용되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볼 수 있도록 당시의 사진·기록자료를 함께 구성한 게 이번 전시 특징이에요. 전시 작품 일부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시민들이 손에 들었던 시위용 그림, 또는 거리와 광장에 걸렸던 걸개그림으로 실제 사용됐죠.
1987년 6월 9일 연세대 앞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희생된 이한열 열사를 추모하는 이명복의 ‘별이 되다-이한열 열사’(1994).

1987년 6월 9일 연세대 앞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희생된 이한열 열사를 추모하는 이명복의 ‘별이 되다-이한열 열사’(1994).


80년대 도시 곳곳 벽에 포스터를 붙여 저항하던 청년 미술가들을 그린 박영균의 ‘벽보선전전’은 ‘2016년 보라Ⅱ’와 마주하고 있는데요. 당시 정권이 규정한 예술가 블랙리스트 소식에 스스로 검열하는 작가의 작업실을 그린 ‘2016년 보라Ⅱ’ 속 작업실 밖을 살피는 작가는 ‘벽보선전전’ 속 망보는 사람과도 겹쳐 보입니다.

6월항쟁의 승리는 이후 노동운동·시민사회운동의 성장을 이끌며 우리 사회의 근본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저항으로 이어졌어요. 정정엽의 ‘잔업 없는 날’ 속 여성 노동자들의 웃는 얼굴은 그 옆에 걸린 YH노동자들의 신민당 당사 농성 사진과 오버랩되며 고단한 현실을 섬세하게 보여주죠. 전시의 마지막은 2024년 12월 21일 추웠던 남태령 아스팔트 위에서 이뤄진 든든한 연대를 그린 김화순의 ‘남태령의 밝은 밤’이 장식합니다. 장 대리는 “1987년은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외친 수많은 시민의 간절한 염원이 마침내 꽃을 피우듯 민주화의 결실로 이어진 해였다”며 “그때와 오늘의 우리가 크게 다르지 않으며, 민주주의가 과거 이야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모두가 함께 이어가야 할 가치라는 뜻을 담아 ‘다시 피는 유월’을 부제로 붙였다”고 했죠.
1987년 ‘넥타이부대’가 그랬듯, 2024년 12월 남태령에서 펼쳐진 연대를 보여준 김화순의 ‘남태령의 밝은 밤’(2026).

1987년 ‘넥타이부대’가 그랬듯, 2024년 12월 남태령에서 펼쳐진 연대를 보여준 김화순의 ‘남태령의 밝은 밤’(2026).


이어 전시를 찾을 어린이·청소년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작품 한 점으로 신학철의 ‘한국현대사-부활’을 꼽았습니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직후 그려진 작품이에요. 일반 대중의 삶과 애환 그리고 우리 민족이 겪었던 수난과 강인한 생명력을 강조하는 그림을 많이 그려온 신 작가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닌, 사회 전체를 뒤흔든 역사적 사건으로 인식했죠. 군부독재를 상징하는 거대한 녹색 제복을 찢고 솟구치는 인물의 형상은, 억압의 견고한 껍질을 깨뜨리는 민중의 힘을 상징합니다.”

민중의 힘과 부활을 그린 신학철의 ‘한국현대사-부활’(2025)은 1987년 민족미술협의회가 개최한 ‘반고문전(展)’ 출품작으로 2025년 재제작한 작품이다.

민중의 힘과 부활을 그린 신학철의 ‘한국현대사-부활’(2025)은 1987년 민족미술협의회가 개최한 ‘반고문전(展)’ 출품작으로 2025년 재제작한 작품이다.

그림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고자 했던 민중미술은 하나의 미술 장르를 넘어,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변화를 함께 만들어 간 미술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미술가들의 관심사와 표현 방식이 더욱 다양해지며 과거와 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민중미술이 추구했던 정신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죠. 이는 지하 2층의 ‘민주인권그림책 프로젝트’ 공간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요. 걸개그림·판화 형식에서 벗어나 8권의 그림책을 펼쳐 보며 우리 주변의 불편한 진실과 공존,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죠.

‘1987 개화(開花): 다시 피는 유월’
기간: 8월 2일(일)까지
장소: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71길 37 민주화운동기념관 M1 1층
관람료: 무료






김현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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