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내각 지지율이 출범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황실전범(황실 관련 법률) 개정을 강행한 뒤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성 천황을 인정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과 달리 남계 남성 중심의 왕위 계승 원칙을 유지한 것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20일 마이니치신문이 18~19일 실시한 전국 여론조사에 따르면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은 41%를 기록했다. 한 달 전(51%)보다 10%포인트 하락했다. 지난해 10월 내각 출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44%로 집계됐다. 비지지율이 지지율을 앞선 것은 다카이치 내각 출범 이후 처음이다.
아사히신문 조사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지지율은 전달보다 7%포인트 하락한 53%였다. 정권 출범 이후 처음으로 50%대로 내려왔다. 아사히뉴스네트워크(ANN) 조사에서도 지지율은 49.2%로 집계돼 처음으로 50%를 밑돌았다. 지지통신 조사 역시 49%를 기록했다.
이번 지지율 하락의 배경으로는 지난 17일 국회를 통과한 황실전범 개정안이 꼽힌다.
나루히토 일본 왕세자와 마사코 왕세자비. AP=연합뉴스
개정안은 여성 왕족이 결혼한 뒤에도 황실에 남을 수 있도록 했다. 대신 여성 천황과 여계 천황은 인정하지 않았다. 또 옛 왕가의 남계 남성을 양자로 들여 황실을 유지하도록 했다. 입양된 남성 본인에게는 왕위 계승권을 주지 않지만, 그 아들에게는 계승 자격을 부여하도록 했다.
정부는 황족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론은 달랐다.
아사히신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60%는 이번 개정이 "국민의 이해를 얻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해를 얻었다"는 응답은 24%였다.
마이니치 조사에서도 개정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은 19%에 그쳤다. 부정 평가는 45%였다.
여성 천황에 대한 여론은 개정안과 큰 차이를 보였다. 마이니치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2%가 여성 천황을 인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인정할 필요가 없다는 응답은 11%였다. 아사히 조사에서도 여성이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는 현행 제도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응답이 62%로 집계됐다.
자민당 지지층에서도 여성 천황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60%를 넘었다.
일본 언론은 정부가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제도 개편을 밀어붙였다고 비판했다. 특히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신문은 개정안 통과 이후 사흘 연속 1면에서 문제점을 지적했다.
요미우리는 여성 왕족이 결혼 후에도 황실에 남지만 남편과 자녀의 지위가 불명확한 점을 지적했다. 또 먼 방계 혈통의 남성을 양자로 들이는 방식도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개정법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한 논의를 즉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지율 하락에는 경제 문제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아사히 조사에서 고물가 대응을 “평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57%로 집계됐다. 정권 출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물가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황실전범 개정, 국기훼손죄 신설, 부수도 지정 등 민생과 거리가 있는 법안을 우선 추진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다만 황실은 법안 통과 이후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나루히토 일왕은 법안 처리 전 “국민의 이해를 얻을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법안이 통과된 뒤 구로다 다케이치로 궁내청 장관은 “개정 내용에 따라 황실 구성원들이 원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충분히 배려하며 지원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