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포통장을 대여하는 중간조직의 돈을 다시 빼돌린 범죄 조직이 경찰에 적발됐다. 경찰은 범죄 조직을 도리어 범죄 대상으로 삼아 피해자로 만드는 ‘역편취’ 사례라고 보고 있다.
경기 오산경찰서는 최근 대포통장 유통 조직과 이 조직의 돈을 중간에서 가로챈 내부 조직원들을 수원지검에 송치했다. 사진은 범행 상황을 묘사한 인공지능(AI) 일러스트. 퍼플렉시티(Perplexity).
20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 오산경찰서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확보한 대포통장에서 약 3억6000만 원을 가로챈 조직원 18명을 검거해 지난 7일 수원지검에 송치했다. 경찰은 총책 2명은 구속 송치하고 나머지 조직원 16명은 불구속 송치했다.
이 사건은 보이스피싱 A조직과 대포통장 대여 B조직, 그리고 B조직이 관리하던 자금을 다시 가로챈 내부 조직원들(C조직)이 연루된 ‘다층 구조’로 파악됐다. 경찰에 따르면 B조직은 텔레그램 주식 리딩방 등을 통해 대포통장을 빌려줄 명의자들을 모집한 뒤 이들의 통장·체크카드·인증수단 등을 A조직에게 넘기는 역할을 해왔다.
C조직은 B조직이 구축한 대포통장 공급망에 파고들었다. B조직은 모집한 명의대여자들을 여관·모텔 등에 모아 합숙시키며 입금 상황을 실시간으로 감시했는데 이 현장에 숨어들었다.
이후 대여자들의 휴대전화에서 입금 알림이 울리는 즉시 “잠시 어디 좀 다녀오겠다”고 한 후 돈을 인출하거나 다른 계좌로 이체한 후 잠적하는 수법을 썼다. 일반인의 돈을 편취하려 한 A·B조직보다 발 빠르게 움직인 ‘시간차’ 범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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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다툼이 낳은 가로채기…계좌추적·CCTV로 추적
B조직 처럼 통장 명의를 대여할 명의자들을 모집해 범죄조직에 대포통장을 공급하는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대구경찰청이 대포통장 공급 조직 38명(14명 구속)으로부터 압수한 현금. 대구경찰청.
C조직이 B조직의 범죄 현장에 손쉽게 잠입할 수 있었던 건 이들 역시 과거 B조직 소속원이어서다. 그러다 조직원들 간에 이익배분 문제가 생겼고, 하나둘 B조직의 자금을 빼돌리다 이후 새로운 조직으로 분화했다.
이들이 덜미에 잡힌 건 A조직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면서다. 경찰은 A조직원 4명으로부터 약 8000만원 상당의 보이스피싱 피해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접수한 후, 약 1년(2025년 4월~올해 3월)간 계좌 추적을 통해 피해 자금의 흐름을 조사했다.
이후 폐쇄회로(CC)TV 등을 중복 확인해 돈을 인출한 인물들을 특정해 검거했다. 총책 2명은 각각 서울 강남구 논현동과 경기 평택시에서 붙잡혔다.
경찰 관계자는 “대포통장 조직이 또 다른 대포통장 조직을 상대로 범행한 이례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그간 대포통장 대여조직이나 명의대여자 개인이 범죄조직의 돈을 가로챈 일탈적 횡령은 간헐적으로 발생했지만, 조직적으로 대포통장 조직을 노린 사례는 드물다는 설명이다.
경찰은 B·C조직이 당초 하나의 조직으로 움직이며 타인 명의의 통장을 매매하는 등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검찰에 송치했다. 또 피의자들이 범죄를 목적으로 조직을 구성하고 역할을 분담해 활동한 것으로 보고 폭력행위처벌법 제4조(범죄단체 구성 및 활동) 위반 혐의도 함께 적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