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12일 사상 첫 국민참여재판이 대구지방법원 11호 법정에서 열렸다. 중앙포토
지난 3일 서울중앙지법 서관 103호. 검은 백팩을 맨 20대 남성부터 희끗한 머리에 얇은 카디건을 걸친 중년 여성까지 저마다 다른 연령과 직업의 사람들이 하나둘 법정에 들어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 조순표) 심리로 열린 보이스피싱 조직원 이모(38)씨의 국민참여재판에 참석한 배심원 후보자들이었다. 웅성거리던 법정은 7명의 최종 배심원이 선정되고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자 이내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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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와 변호사의 ‘배심원 설득전’
이씨 사건의 쟁점은 적정 양형이었다. 이씨는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범죄단체에서 일본인 여성인 척 연락을 돌린 뒤 “쇼핑몰과 코인에 투자하면 큰 수익을 얻을 것”이라고 속여 3억3000여만원을 가로챘다. 이씨는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감경을 요청했다.
이씨 측은 가족관계증명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변호인은 “가족들이 이씨가 다시 범죄에 빠지지 않게 돌볼 거다. 이씨는 과거 직장에 다니며 건실히 살았다”고 했다. 변호인은 파워포인트로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라는 문장을 띄웠다. 이씨는 최후진술에서 “정말 죄송하다”며 배심원단에게 허리를 숙였다. 이씨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배심도 있었지만, 몇몇은 고개를 돌렸다.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할 때 법정 모습을 그린 일러스트. 자료 법원행정처
검사는 “알람 맞춰 겨우 일어나고, 직장 상사에게 혼나며 한 달에 몇백만 원을 버는 걸 범죄자는 5분 만에 번다”라고 했다. 이어 “아이가 우는데 분유 살 돈이 없어서 도둑질을 했다면 선처할 수 있지만, 이씨는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라고 하자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배심원이 나왔다.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일반 국민의 시각에 맞춰 변론하는 게 국민참여재판의 특색”이라고 설명했다. 검사는 발언을 시작할 때마다 “배심원 여러분이 고생이 많으시다”고 했다.
보이스피싱은 법정형이 1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범죄단체 활동 혐의가 더해진 이씨는 최대 45년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 형량이 무거운 만큼 일반 비법조인 시각을 반영하고 싶은 피고인들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다. 2시간의 평의 끝에 배심원 3명이 징역 4년을, 1명이 징역 6년을, 3명이 징역 7년을 권고했다. 검사 구형은 징역 10년이었다. 재판장은 “배심원 양형 의견을 존중해 중간점으로 결정했다”며 징역 6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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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과 재판부 판단, 94% 일치
법관들은 국민참여재판이 법원의 신뢰 회복에 기여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일반 국민들에 대한 법교육 기능도 있다. 재경지법의 부장판사는 “국민참여재판 1건을 하면 다른 사건의 기일 10여 개를 포기해야 하는 셈이라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비법조인은 동일한 사안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어 법관이 배우는 것도 많다”고 했다.
2008년 시행 이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 사건 중 93.9%는 배심원 평결과 재판부 판단이 일치했다. 국민참여재판 1심이 항소심에서 파기되는 비율은 29.9%로, 전체 1심 파기율인 42.1%보다 낮다.
법원은 배심원 후보자들에게 발송하는 18쪽 분량의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안내서』를 발송한다. 대법원 법원행정처
배심원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 역시 나온다. 법원이 배심원 후보자들에게 발송하는 18쪽 분량의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안내서’ 중 법률용어 설명에 할애된 분량은 3쪽에 불과하다. 검사, 피고인, 기소 등 16개 용어를 설명한다. 다른 법률용어는 법정에서 재판장과 검사가 풀어서 얘기한다. 수도권 부장판사는 “비법조인에게 법률용어를 설명하는 게 어려운데, 각자 재판부에서 전해내려 오는 참고자료에 의지한다”고 했다. 검사는 별도 매뉴얼 없이 과거 국민참여재판 기록을 참고하는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