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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흑해 다 막히나…글로벌 원유·곡물길 동시에 흔들

중앙일보

2026.07.21 00:04 2026.07.21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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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의 두 생명줄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원유가 지나는 홍해와 곡물이 오가는 흑해가 이란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나란히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면서다.

지난해 7월 9일(현지시간) 그리스 선사 소유의 라이베리아 화물선 ‘이터니티 C’가 홍해에서 후티의 공격을 받아 침몰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7월 9일(현지시간) 그리스 선사 소유의 라이베리아 화물선 ‘이터니티 C’가 홍해에서 후티의 공격을 받아 침몰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친이란 성향의 예멘 후티 반군은 지난 20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해상 봉쇄를 선언했다. 이들이 통제하는 예멘 서부 지역은 홍해의 남쪽 관문인 바브엘만데브해협과 맞닿아 있어 해협 내에서 상선 공격이 재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후티는 2023년부터 홍해를 지나는 상선을 여러차례 공격해 세계 해운을 마비시킨 전력이 있다.


후티의 이번 봉쇄 선언은 미국과 이란 전쟁의 연장선상이다. 사우디는 공식적으로는 중립을 유지하고 있지만 미국의 핵심 중동 우방으로 꼽힌다. 특히 지난 13일 사우디가 예멘 사나 국제공항 활주로를 공습해 이란에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귀국하던 후티 대표단이 탄 항공기의 착륙을 막으면서 양측의 긴장이 급격히 고조됐다.

후티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사우디 아브하 국제공항에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감행했고, 이어 미국의 대이란 군사작전을 지원하는 국가에는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며 사우디에 대한 해상 봉쇄를 선언한 것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이번 봉쇄는 사우디를 압박하는 동시에 중동 에너지 공급망을 흔들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바브엘만데브해협은 인도양에서 홍해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홍해는 세계 해상무역의 약 12~15%, 컨테이너 물동량의 약 30%가 지나는 핵심 항로다.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이어 이곳까지 막히면 중동의 양대 원유 수송로가 동시에 차단된다.

특히 사우디가 홍해 연안 얀부항을 호르무즈해협의 대체 수출로로 활용해온 터라 직격탄이 예상된다. 원자재 정보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사우디는 지난 4월 이후 얀부항에서 하루 평균 450만 배럴 이상의 원유와 석유제품을 선적했으며, 이 가운데 약 70%가 아시아로 향했다.

미국 외교협회(CFR)는 이번 사태를 “또 다른 호르무즈전(戰)”이라고 평가했다. 에드워드 피시먼 CFR 선임연구원은 “후티가 바브엘만데브해협을 봉쇄하면 사우디가 사실상 원유를 수출할 방법이 없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6일(현지시간) 예멘 사나에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친이란 시위 도중 한 후티 지지자가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4월 6일(현지시간) 예멘 사나에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친이란 시위 도중 한 후티 지지자가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물론 다른 운송로가 있다. 2023년 후티의 홍해 공격 당시에도 머스크와 하파크로이트 등 주요 선사들은 수에즈운하 대신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우회했다. 하지만 이 루트를 선택할 경우 운항 기간과 물류비가 크게 늘어난다. 이번 봉쇄가 현실화하면 현재 홍해를 통해 아시아로 향하는 사우디 원유 하루 300만 배럴 이상이 희망봉으로 우회해야 하는데, 이 경우 얀부항에서 출발한 원유가 아시아 정유사에 도착하는 기간이 약 한 달 늘어날 수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분석했다.

게다가 후티의 봉쇄 선언 직후 홍해를 지나는 선박의 전쟁보험료도 선박 가격의 약 0.3%에서 0.75%로 뛰었다. 표준 선박 한 척이 한 차례 운항할 때 수십만 달러의 비용이 추가될 수 있는 수준이다.



‘세계 곡물길’ 흑해도 비상

세계 곡물 수출의 핵심 통로인 흑해 상황도 악화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최근 흑해와 아조프해에서 상대 선박과 항만 시설을 잇달아 공격하면서다. 2023년 흑해곡물협정 종료 이후 양측은 드론과 미사일을 이용한 해상 공격을 이어왔지만 최근 수개월간은 육상 전선에 집중하면서 대규모 해상 충돌은 다소 잦아든 상태였다. 그러나 이달 들어 러시아가 오데사 일대 항만과 상선을 집중 타격하고 우크라이나도 러시아 선박을 겨냥한 공격을 재개하면서 해상 전선이 다시 격화하는 모습이다.

지난 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오데사 인근 흑해에서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기니비사우 선적 곡물 운반선 '골든 레오(Golden Leo)'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오데사 인근 흑해에서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기니비사우 선적 곡물 운반선 '골든 레오(Golden Leo)'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군은 지난 19일 우크라이나 오데사 인근에서 옥수수를 싣고 출항하던 기니비사우 선적 튀르키예 곡물 운반선 ‘골든 레오’호에 순항미사일 3발을 발사했다. 이 공격으로 인도인 선원 4명을 포함해 5명이 숨지고 5명이 실종됐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 거점인 오데사 일대 항만과 선박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이면서 이달 들어 현지 민간인 28명이 숨졌고, 우크라이나 흑해 항구의 곡물 수출 능력도 월 600만t에서 400만t으로 약 3분의 1 줄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우크라이나도 러시아 유조선과 화물선을 공격하며 맞서고 있다. 이에 러시아가 자국 곡물 수출의 약 4분의 1이 통과하는 아조프해와 케르치해협의 선박 운항을 제한하자, 지난주 유럽 밀 선물 가격은 한때 7%, 시카고상품거래소(CBOT) 밀 선물은 5%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이고 우크라이나도 주요 곡물 수출국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농산물 수출의 대부분이 오데사 일대 항구를 거치는 만큼 해상 공격이 장기화하면 우크라이나 경제뿐 아니라 세계 곡물 공급과 가격에도 직접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



“복합 위기 더한 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전문가들은 홍해와 흑해의 동시 위기가 에너지와 식량 가격을 동시에 끌어올릴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유가 상승은 모든 제품의 생산 원가를 끌어올리는 만큼 소비가 위축되고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과 경기 정체를 의미하는 ‘스태그네이션’이 결합한 합성어)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1970년대가 유가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유가와 곡물, 물류비가 함께 오르는 복합 위기”라고 말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은 원유와 곡물 대부분을 수입하는 만큼 물가와 기업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정부는 전략 비축과 수입선 다변화로 공급망을 안정시키고 기업도 특정 국가와 항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지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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