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주가 15% 하락? 하루 만에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메모리 팹(공장)은 하루아침에 지을 수 없다. 우리는 고객사의 장기적인 생산·건설 계획을 본다.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
-벤자민 하인 머크 전자부문 최고경영자(CEO)
“메모리 수요 급증 때문에 ASML과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관련 논의 중이며, 한국 활동을 집중 강화할 것이다.”
-베르톨트 슈미트 트럼프 최고기술경영자(CTO)
“심장이 약한 분들은 (등락 폭이 심한) 반도체 업계에서 일하지 않는 게 좋다. 그러나 평균적으로는 상승세다.”
-프랑크 로문트 자이스 반도체사업부 CEO
14일(현지시간) 독일 담슈타트 머크 본사에서 벤자민 하인 머크 일렉트로닉스 최고경영자(CEO)가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 머크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대체 불가’ 소재·부품·장비 업체인 독일 3사 경영진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14~16일 독일 현지에서 각각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다.
머크(Merck)는 특수가스 같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에서만 연간 약 6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화학 기업이다. 트럼프(TRUMPF)와 자이스(ZEISS)는 전 세계에서 ASML만 만들 수 있는 초미세 반도체용 EUV 장비에 각각 레이저와 초정밀 거울을 독점 공급하는 숨은 강자다.
트럼프 CTO는 지난달, 자이스 반도체부문 CEO·CTO는 지난주 한국을 다녀온 참이었다. 이들은 “호남 반도체 투자가 발표되던 때 한국에 있었고, 고객사와 긴밀하게 협의 중이다”(트럼프 CTO), “한국 고객사와 밀접한 소통을 위해 지난주 용인에 혁신 센터를 열었다”(자이스 CEO)라고 말했다. 다만 “중요한 건 ‘대형 투자 발표’가 아닌 실제 고객이 하고 있는 일을 파악하는 것이어서, 고객사 C레벨과 정기 회의를 갖는다”(머크 CEO)는 점도 분명히 했다.
3사 CEO가 3일간 각각 진행한 간담회였지만, 메시지는 겹쳤다. ▶메모리 수요가 폭증한다 ▶첨단 패키징이 중요하다 ▶3차원(D) 반도체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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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메모리 병목, 쉽게 해결 어려워
최근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주가는 급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AI 투자와 메모리 수요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전망도 엇갈린다. 오는 27일 상장을 앞둔 중국 창신메모리(CXMT)도 큰 변수로 꼽힌다.
그러나 머크의 하인 CEO는 “메모리 제조사가 소수이며 기술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메모리 병목은 몇년 간 지속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의 로드맵은 투명한 편이라 10년 후를 내다볼 수 있는데, 내년에 갑자기 획기적인 기술이 나타나 업계를 뒤흔들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이다.
16일(현지시간) 독일 오버코헨 자이스(ZEISS) 본사에서 자이스 반도체사업부의 프랑크 로문트 CEO(오른쪽)와 토마스 스탐러 CTO(왼쪽)가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 자이스
토마스 스탐러 자이스 CTO는 “우리와 ASML은 EUV를 중국에 팔지 않는데, 로직 반도체뿐 아니라 첨단 메모리도 EUV 없이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칩을 쌓거나 새로운 구조를 도입해 EUV 없이 고성능 칩을 만들려고 시도할 수는 있으나, 구형 반도체를 쌓는다 해도 에너지·비용 효율성이 떨어진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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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후공정에서 혁신 나온다
3사 모두 첨단 패키징 분야의 성장세가 가장 가파를 것으로 봤다. 트럼프는 차세대 유리기판용 유리관통전극(TGV) 레이저와 고대역폭메모리(HBM)용 패키징·다이싱(웨이퍼 자르기) 레이저를 판매 중이다. ASML에만 납품해야 하는 EUV용 레이저와 달리, 이런 장비는 삼성전자·SK는 물론 나우라 같은 중국 회사에도 공급할 수 있다.
트럼프의 엔지니어가 클린룸에서 레이저 장치를 조정하고 있다. 이 장치는 ASML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의 핵심 부품이다. 사진 트럼프
머크의 하인 CEO는 “3년 전에는 주요 메모리 제조사의 개발 주기가 3~5년이었는데, 요즘은 거의 매년 혁신 기술과 신제품을 낸다”라며 “품질과 규모 이상으로, 속도가 절대적으로 중요해졌다”라고 말했다.
머크는 첨단 패키징용 신소재 개발을 위해 방대한 소재 데이터베이스와 이에 기반한 자체 AI를 개발했다. 14일 다름슈타트 머크 본사에서 만난 엔지니어 토비아스는 “고객 요구에 맞는 신소재 개발에 2~3년이 걸렸는데, AI를 쓰니 몇 주 단위로 단축됐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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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3차원 D램·낸드 위한 기술 개발 활발
지난 16일 독일 오버코헨에 위치한 자이스 클린룸에서는 EUV를 이용한 3D 반도체용 검사·계측 장비 실험이 한창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자이스 엔지니어는“3차원 낸드·D램 반도체의 복잡한 내부를 들여다보고 불량 여부를 검사할 수 있는 장치”라며 “아시아가 최우선 시장”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2년 전 제이 리(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방진복 입고 들어와 이곳을 보고 갔다”고 귀띔했다. 클린룸 벽에는 주요 고객인 한국·미국·대만 3개국 시간을 표시하는 세계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자이스가 ASML에 독점 공급하는 극자외선(EUV)용 광학 시스템. 1만5000개 이상의 부품으로 구성됐고 1.5톤 이상 무게다. 사진 자이스
지난 10일 자이스는 고객사가 직접 써볼 수 있도록 첨단 장비를 갖춘 반도체 혁신센터(ZSKIC)를 경기도 용인에 열었다. ASML에 납품하는 EUV용 렌즈 외에, 삼성·SK하이닉스 등에 직접 검사·계측 장비를 공급하며 시장을 넓히기 위해서다.
이번 독일 3사의 간담회와 클린룸 공개는 한국·일본·대만 3국 기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 가운데 각국 반도체 산업의 특성도 엿보였다. 대만 기자들은 주로 TSMC 관련된 질문을 던졌고, 머크에 “왜 한국에서만 인수합병*을 했나”, 자이스에는 “혁신 센터를 대만에는 언제 열 건가” 등 한국과 비교하는 질문을 쏟아냈다.
*머크는 2022년 한국 소재 회사 엠케미칼을 인수했음.
한 대만 기자가 트럼프에 “한국과 대만 중 어디에 EUV 기기가 더 많이 설치돼 있느냐”고 묻자, 트럼프 측이 “대만에 더 많이 설치돼 있지만, 최근 한국 시장의 성장세가 훨씬 더 강력하다”라고 답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