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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도너번의 마켓 나우] 돈 많은 세상, 돈 필요한 정부

중앙일보

2026.07.21 08:04 2026.07.2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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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도너번 UBS 글로벌 웰스 매니지먼트 수석 이코노미스트

폴 도너번 UBS 글로벌 웰스 매니지먼트 수석 이코노미스트

부(富)는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다. 대다수 경제지표는 소득이나 성장률처럼 일정 기간의 변화를 다룰 뿐, 부와 같이 오랜 기간 쌓인 총량은 세세히 기록되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경제모형으로 대략의 흐름은 파악할 수 있다. 2025년 세계 부는 달러 기준으로 10% 이상 늘어난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중 일부는 달러 약세에 따른 착시 효과다.

물가 상승을 고려해도, 각종 자산지표는 2020년 이후 한국의 부가 원화 기준으로 크게 늘었음을 보여준다. 초고액 자산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평범한 가구의 자산도 함께 늘었다. 다만 부가 늘었다고 곧바로 살림살이가 넉넉해지는 것은 아니다. 집값이 5년 전보다 올랐다 한들 당장 쓸 수 있는 돈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삶의 질이 실제로 나아졌는지 판단하려면 부뿐 아니라 소득과 구매력도 함께 살펴야 한다.

이런 세계적인 부의 증가는 정부 부채 증가와 함께 진행되었다. 한국의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여전히 주요국보다 낮지만, 2000년대 초반에 비하면 세 배 가까이 높아졌다. 정부 부채의 쟁점은 상환이 아니라 조달이다. 정부는 애초에 빚을 온전히 갚는 법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정부가 자금 조달원으로 눈여겨볼 대상 중 하나는 민간이 쌓아온 부다.

정치권에서는 부유세나 상속세 강화가 먼저 거론될 법하다. 그러나 그런 세금은 그리 효율적이지 않다. 부는 측정하기 어려운 만큼 과세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림 한 점의 가치는 얼마로 매겨야 하는가. 영세 기업의 가치는 어떻게 산정하며, 그런 방식으로 보유한 부에 세금을 매기는 일이 경제적으로 타당한가. 반면 사고팔아 생긴 차익에 매기는 양도소득세는 계산이 한결 단순하다. 부를 현금화하려면 분명한 시장가격이 필요하고, 그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길 수 있다. 현금이 오가는 만큼 세금을 낼 재원도 자연스레 마련된다.

과세만이 능사는 아니다. 앞으로 정부는 민간의 부를 부채 조달 쪽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늘려갈 공산이 크다. 국채 매입에 세제 혜택을 주는 제도는 이미 흔하다. 미국에서는 주정부와 지방정부가 발행하는 채권 보유자에게 세제 혜택을 준다. 여러 나라는 세제 혜택이 딸린 우편저축 제도로 국민의 저축을 모아 국채에 투입해 왔다. 정부는 연기금·은행·생명보험사에 대한 규제를 통해 이들 금융기관이 관리하는 민간의 부를 국채로 돌리기도 한다. 정부는 대체로 시장금리보다 낮게,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려고 한다.

오늘날 세계는 역사상 가장 많은 부를 쌓아 두고 있다. 그만큼 역사상 가장 많은 빚에 짓눌린 정부들이 그 부에 눈독을 들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폴 도너번 UBS 글로벌 웰스 매니지먼트 수석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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